이대 의료진 구속 사건을 보며, ‘어머니, 진료받을 때 아들이 의사라고 꼭 말하세요.’

[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요란하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성적은 좋은 편이었고, 그 덕에 의대에 입학했죠. 어머니는 그런 제가 자랑스러우신지 종종 동네에서 제 자랑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흥이 넘치셔서 저에게도, 오늘 누구에게 어떤 자랑을 했는지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런 자랑이 부끄러워 저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그런 저에게 미안하다 말하곤 하셨습니다. 하지만 계속 저 몰래 자랑을 하곤 하셨었죠.

 

인턴 생활을 하던 어느 날 어머니가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셨습니다. 쓰러져서 응급실에 있다면서요. 당직 근무 중이라 병원을 빠져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어머니께 당부했습니다.

‘어머니, 진료받을 때 아들이 의사라고 꼭 말하세요.’

다행히 큰 문제는 아니었고 어머니는 곧 퇴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그때 제가 한 말이 의외였는지 어느 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런 거 안 좋아하면서, 그날은 왜 의사라고 말하라고 한 거니? 왜, 혹시 병원에서 사기칠까봐?"

"음... 그것보다는요... 요즘 의사들도 몸을 사려요. 의사도, 의료장비도, 약도, 간호사도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검사나 치료 결과가 잘못되면 의료진이 법적인 책임을 져요. 심지어 잘못이 없어도 보상해야 하는 법도 있어요. 그래서 의사들이 이전처럼 의학적인 판단만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방어하려고 노력해요."

"그럼, 아들이 의사라고 말하면 뭐가 달라지니?"

"가족이 의사면 불필요한 소송 안 걸 테니까,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거든요."

 

제 가족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아들이, 동생이 의사라고 꼭 말을 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걱정도 해주시죠. 너는 의료사고 안 터지게 조심해서 진료하라고요. 의사를 자녀로, 형제로, 배우자로 둔 가족의 아이러니입니다. 자신은 의학적 판단으로만 진료를 받고 싶지만, 자신의 가족인 의사는 법적인 문제가 안 생기는 진료만 하기를 바라니까요.

 

 

 

얼마 전 이대 의료진 구속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대 의료진이 수사에 비협조적이거나 증거를 은폐하려 한다면 당연히 구속해야 합니다. 혹은 신생아의 죽음과 의료진 과실이 명확하게 인과관계가 밝혀진다면, 이대 의료진이 구속되어도 지금 같은 의료진의 동요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명확한 의학적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이 시점에서의 구속 수사는, 상황을 지켜보는 의료진이 의학적 기준보다 자신의 안전을 과도하게 신경 쓰게 만들 것입니다. 이대 의료진의 구속이 적절하든 부적절하든, 혹은 구속이 되든 안 되든 의사들이 의료 행위로 버는 돈은 달라질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이대 의료진의 구속 사건으로 인해 의사들은 더 자신의 안위를 신경 써가며 진료할 수밖에 없겠죠. 선례가 있으니까요. 위축된 의료진은 정상적인 진료를 할 수 없고, 결국 피해는 환자가, 국민이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 부적절한 구속 수사를 진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철저한 수사는 필요합니다. 이 비극의 반복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졸음운전을 하는 버스운전기사가 교통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겠지만, 버스운전기사의 졸음운전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졸음운전을 하게 만드는 회사와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의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고가 나게 하는 병원 환경과 그 환경을 만드는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많은 의사들이 신생아 사망 사건의 책임을 의료진 개개인에게가 아니라, 이대 병원과 보건복지부, 심평원 및 관계 기관에 지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한 개인이 아무리 도덕적이라도, 동일한 병원 환경과 정책 속에 들어간다면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실력 있는 외과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수술을 하던 중 전기가 끊겨 환자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조사를 하던 중, 수술에 들어왔던 간호사 중 한 명이 손을 씻지 않았음이 밝혀졌습니다. 수술 중 병원의 전력 공급이 끊긴 것이 사망의 원인이었지만, 간호사가 규정을 지키지 않았음을 이유로 의료진에게 책임을 지웠습니다.

 

이 사건의 책임은 누구에게, 얼마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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