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의학신문 : 중독포럼 윤동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 워킹맘 A씨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육아를 위한 출근길이기도 합니다. 씻는 둥 마는 둥 대충 옷만 갈아입고, 전투적으로 육아를 하다 겨우 재우고 한숨을 돌리면 11시를 훌쩍 넘깁니다. 회사 일로 인한 스트레스, 육아와 남편, 가족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TV를 보며 캔맥주를 마시는 일이 유일한 행복입니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처음에는 하루에 한 캔으로 마무리했던 맥주가 맥주가 어느새 6캔으로 늘었습니다. 

#2. 내성적인 B군은 사람들과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가 어색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왠지 모르게 친해진 것 같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이제는 술자리가 시작하기 전의 어색함이 싫어 몇 잔을 혼자 연거푸 빨리 마시고 사람들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술이 깨고 다시 만나면 그들과의 친밀감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다시금 불안이 몰려옵니다.    

#3. 3교대 근무인 C양은 불규칙한 수면시간 때문에 늘 피곤합니다. 오늘도 집에 가기 전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사서 집으로 향합니다. 그녀가 술을 마시는 이유는 잠을 자기 위해서입니다. 그녀에게 술은 수면제보다 안전하게 여겨집니다. 이전에는 너무 피곤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술은 몸을 나른하게 만들어 어느 순간 잠에 빠지게 하니까요. 수면제를 먹지 않아도 잘 수 있게 해주는 술이 때로는 고맙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보다 숙면에 들지 못하고, 술의 양도 더 늘어만 갑니다. 

 


여러분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씨처럼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
B군처럼 사람들과의 친밀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
C양처럼 잠을 잘 자기 위해서? 

현대 사회에서 스트레스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과의 친밀함을 위해,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술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우리가 술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빠르게 조절해주기 때문입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건강에 나쁜 술을 마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부부의 사람들은 술을 일상생활에 윤활유가 될 정도로 사용하거나, 치명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전에 멈추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흔히들 ‘알코올 중독’이라 하면 엄청나게 술독에 빠져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정도로 무너진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은 이런 목적으로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아직 큰 문제가 없고,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알코올을 남용하는 문제로 병원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음 술을 본격적으로 마시게 된 이유는 앞의 예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시작은 누구나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쉽게 술을 찾는 행동들은 쉽게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대인관계를 친밀하게 만들어 주거나, 빨리 잠을 잘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같은 효과를 내기 위한 술의 양이 늘어나고, 같은 양으로 낼 수 있는 효과가 줄어드는 내성이 생기면서, 좀 더 빠르고 쉽게 효과를 얻으려는 역기능적인 생활 방식이 굳어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쉽게 술에 심리적으로 의존하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문제를 좀 더 쉽고 빠르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 불안, 우울 등의 감정을 혼자 마시는 술 한잔으로 쉽게 잊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한잔의 술이 우리의 마음에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경험하셨듯이 술을 마시고 좋아진 기분은 매우 일시적이고, 오히려 술의 기운이 사라지면 처음보다 더 불쾌한 기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폭음 이후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는 마치 갈증이 난 상태에 바닷물을 마시는 행위와 같습니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 바닷물은 더욱 갈증을 유발하게 되니까요. 

술로 인해 얻은 다른 사람과의 친밀감 역시 진실된 것이 아닙니다. 술을 마시고 가진 친밀함은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맨 정신으로 만나면 어색하고 공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대인관계를 위해 술을 계속적으로 찾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자신을 충족시켜주는 기능이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술을 통해 자신을 복구하고 친밀감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C양의 예처럼 불면증의 해결을 위해 마시기 시작한 술은 점점 양이 늘어납니다. 술은 수면 전반부에는 입면을 도와주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수면의 질이 떨어트립니다. 더구나 많이 마신 술은 이뇨 작용도 있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주 깨기도 합니다. 심지어 코골이, 수면 무호흡증을 악화시켜 수면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술을 통해 빠르고 쉽게 불편함을 조절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술을 마셔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자기 조절의 시도이기는 하지만 방향이 ‘잘못된’ 시도입니다. 부정적인 감정, 스트레스,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감, 불면증이 술을 통해 해결된다면 아무 문제 되지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오히려 해가 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의존되는 패턴에서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이 술을 마시는 진짜 원인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진짜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술만 억제하면 다른 행동이나 물질에 의존하는 교차 중독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스트레스로 받은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거나,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숙면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면 전문가를 찾아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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