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 낙관성과 비현실적 낙관성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학창 시절, 숙제도 하지 않고 무엇 하나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대책 없이 낙관적인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뭘 그렇게 걱정해? 너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너는 왜 그렇게 팍팍하게 구냐?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하는 친구들은 성격도 좋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도망치기 바쁜 경우도 많습니다.

낙관주의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세상과 인생을 희망적으로 밝게 보는 생각이나 태도”로 정의됩니다. 한마디로 낙관성이란,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낙관성에 대해서 간혹 오해하거나 선입견을 가지는 분들도 있으십니다. 낙관성이 단순히 마음속에 막연한 기대감만 품거나 잘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하면 정말로 모든 일들이 잘 풀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비현실적인 믿음을 갖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이는 낙관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낙관성에 대해, 현실적 낙관성과 비현실적 낙관성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현실적 낙관성이란, 자신의 행동과 노력을 수반한 기대와 희망을 뜻합니다. 반대로 비현실적 낙관성이란, 어떠한 행동이나 노력도 없이 막연하게 기대와 희망을 품는 것입니다. 

 

 

긍정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낙관성 학습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과 사고 등을 해석하는 방식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어떤 사건이나 사고를 개인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설명 양식’이라는 용어로 칭했는데요, 낙관적인 설명 양식을 가진 사람과 비관적인 설명 양식을 가진 사람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1. 내재성 차원 - 내 탓 vs 남 탓 

내재성 차원은 나쁜 일이 일어난 원인을 주로 내 탓(내부)으로 돌리느냐, 아니면 남 탓(외부)으로 돌리느냐의 태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낙관적인 사람은 주로 외부 탓을 하지만, 비관적인 사람은 자기 탓을 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물론, 객관적 상황이나 사실 관계에 따라 실제 원인이 내부에 있을 수도, 또 외부에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관적인 사람은 낙관적인 사람에 비해 습관적으로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기 때문에 우울감이나 무력감, 죄책감 등도 더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2. 영속성 차원 - 항상 vs 가끔

영속성 차원은 내 삶에서 나쁜 일이 ‘항상’ 일어난다고 보는지, 아니면 ‘가끔’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생각하는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유독 자신의 인생에서만 나쁜 일들이 항상 끊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나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며 일시적인 일일 뿐 곧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만연성 차원 - 전부 vs 일부 

만연성 차원은 한 가지 실패나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자신의 삶 전체가 실패했다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하는지, 아니면 부분적인 실패임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삶의 영역까지 실패로 규정짓지 않을 수 있는지와 관련됩니다. 비관적인 사람은 단 몇 번의 실패에도 크게 패배감을 느끼며 인생 전반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낙관적인 사람은 실패는 피할 수 없으며 인생의 많은 측면 중 삶의 한 단면으로 이해합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하며,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비관적인 관점으로 일관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늘 우울하고, 희망감을 찾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이런 분들은 조금씩 비관적인 태도와 설명 양식에서 벗어나 낙관적인 태도와 설명 양식이 습관이 되도록 바뀌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낙관적인 태도나 설명 양식만 취하는 것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낙관성이 사막에서 쫓는 신기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실천적 노력과 행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막 한가운데서 처음부터 오아시스를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고, 또 신기루만 쫓다가 지쳐 버리는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도 어딘가에 분명 오아시스가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사막에서 필요한 신발이나 물 등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막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를 기대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바람직한 태도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좋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 남아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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