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딸이 신체이형장애가 생긴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딸에 대한 고민으로 사연을 올립니다. 저희 딸은 올해로 스물한 살입니다. 고 2 때부터 불안정한 정서를 보였는데 학업 스트레스라고 여기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 꾸준히 교우 관계나 학업 성적 하향, 학원을 수시로 옮기는 등의 문제가 있었어요. 또 집에서 등교하기가 멀고 공부가 안 된다면서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가게 됐는데, 거기서도 불안해하고 다시 집에 오고 싶어 하는 등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불안정한 모습 등을 보였습니다.

고 1 때까지는 나름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막바지에는 자퇴까지 생각하다 겨우 졸업했는데, 대입도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후에 재수를 하게 됐는데 시험장에만 가면 패닉 상태가 되더라고요. 그 후 자괴감과 실패감에 빠져 방에서 폰으로 아이돌 방송이나 예능만 보며 지내고 있네요. 자주 방에서 울고, 가끔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우울증이 있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학생도 아니고, 알바도 안 하고, 집에서 집안일도 안 하고, 방도 바닥에 옷가지들이 수북한데 “치워 줄까?” 하면, “아니.”라고 자기는 이런 방이 더 편하다고 하기에 존중해 주었는데, 한두 달 전에 갑자기 “승모근이 기형적이다.”로 시작해서 병원과 한의원을 다녔는데, 얼마 전에는 “코가 자꾸 커진다, 원인을 못 찾겠다, 계속 이렇게 코가 커지면 자기는 못 산다. 예전 코가 좋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코가 커져서 너무 괴롭다.”며 엉엉 우네요. 

씻는 것, 먹는 것도 겨우 하며, 계속 폰으로 사진을 찍으며 그전에 찍은 사진이나 거울을 보고 비교하며 우울해합니다. 누가 봐도 코가 커진 것도 없고 자로 재서 확인을 시켜 줘도 믿지 않고, 본인만이 아는 건데 왜 자기 말을 안 믿어 주느냐며 울고불고 그러네요.

예전부터 자기 얼굴만 나오는 사진을 많이 찍었고, 어디를 가도 그곳 경치나 분위기, 가족을 찍기보다 자기 얼굴에 관심이 많고 자기를 찍어 달라고 한 뒤 자기 사진만 계속 쳐다보는 아이였는데… 그 나이 때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거든요.

그러다 2주 전부터는 안 커지는 코가 커진다며 괴로워하고, 자살하고 싶다는 아이를… 어떻게 하면 될까요? 독립적인 듯이 지내던 아이인데, 갑자기 분리불안처럼 엄마인 제 옆에서 손잡고 자려고 하고, 세수할 때도 같이 가 주기를 원해서 그렇게 하고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거울을 보는 게 너무 괴롭고 불안해서”라고 합니다.

외모나 목, 어깨, 턱 등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유튜브로 검증 안 된 자료를 조사하며 전문적인 신체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자기 신체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과민하게 반응하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고,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한창 세상을 향해 나아가서 많은 경험들을 하고 또 가장 예쁠 나이에, 방 안에만 있는 자녀분은 물론 그런 자녀분을 지켜보는 사연자님의 심정은 또 얼마나 속상하실지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연을 읽어 보게 되었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적어 주신 내용대로라면, 따님께서는 “승모근이 기형적이다.”로 시작해서 “코가 자꾸 커진다.”는 등 본인의 신체나 외모에 결점이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많이 답답하시겠지만 사연자님의 이러한 간접적인 기술만으로는 따님께서 ‘신체이형장애’라는 진단을 내릴 수는 없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다른 모든 정신과 질환의 진단과 마찬가지로 특정 장애를 진단 내리기 위해서는 DSM-5의 진단 기준 및 전문가와의 상담과 면밀한 관찰 등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는 신체이형장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일부 진단 기준에 대해 먼저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신체이형장애란, 실제로는 외모에 결점이 없거나 사소한 것임에도, 자신의 외모에 심각한 결점이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질병을 뜻합니다. DSM-5에서는 신체이형장애를 강박장애 및 관련 장애의 하위 질환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이 질환이 신체에 대한 강박적인 생각이나 불안과 관련이 높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신체이형장애 환자들은 자신의 외모를 고치기 위하여 성형수술이나 피부과 시술에 중독되기 쉽지만, 이러한 시술을 통해서도 궁극적인 만족감을 얻지는 못합니다. 또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 학업적 기능의 이상이 보통 동반되며,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와 관련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DSM-5에서 제시한 다음의 4가지 진단 기준을 충족할 때 신체이형장애를 의심해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진단 기준]

- 타인이 알아볼 수 없거나 혹은 미미한 정도의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신체적 외모의 결함을 의식하고 이에 대해 지나친 몰두와 집착을 보인다.

- 외모에 대한 걱정 때문에 질환 경과 중 어느 시점에 반복적 행동(예: 거울 보기, 과도한 치장, 피부 뜯기, 안심하려고 하는 행동)이나 심리 내적인 행위(예: 자신의 외모를 다른 이와 비교하는 것)를 보인다.

- 이런 집착은 사회적, 직업적, 또는 다른 중요한 영역에서 임상적으로 현저한 고통이나 손상을 초래한다.

- 섭식장애의 진단 기준에서 나타나는 체지방이나 체중에 대한 관심에 해당되지 않아야 한다.

 

신체이형장애의 원인은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다양한 연구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생물, 사회, 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로토닌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방출과도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세로토닌의 부족은 우울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는데요, 사연자님의 따님분께서 스스로 “우울증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부족한 세로토닌 방출 또한 의심해 볼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는 신체이형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전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특정 부위만 집중해서 본다거나, 뇌의 시각 자극을 처리하는 영역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서 자신의 얼굴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한다는 연구 결과들도 발표되고 있습니다.

또한 미를 중요시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이나 유소년기의 학대, 신체에 대한 놀림을 당하는 등의 괴롭힘이나 충격적인 경험 등이 신체이형장애의 발생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신체이형장애의 치료는 전문가의 진단과 상담 결과에 따라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치료적 조합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치료가 진행되면서 환자의 상태에 따라 치료 계획을 조정해 나가기도 합니다. 필요한 경우, 약물치료나 심리치료가 시행되며 특히 인지행동치료가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또 치료 과정에서 가족의 참여가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으며, 심리치료는 인지행동치료를 비롯해 환자의 자존감 향상 및 자아정체성 구축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무엇보다도 따님께서 현재 자신의 외모에 대한 결점 인식과 보고를 지속하고 있고, 청소년 시절부터 불안한 정서를 보였던 점, 학업 수행 시 집중 문제, 거울 보는 것에 대한 괴로움, 우울감, 자살 사고 호소 등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만큼 심리적 고통감이 크신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방문하시어 전문가와의 상담 및 치료를 해 나가실 것을 권유 드리고 싶습니다. 따님 분께서 지금 겪는 어려움들을 잘 극복하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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