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 조하리의 창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에게 창문은 어떤 의미인가요? 많은 분들이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커튼을 열어젖히고 닫힌 창문을 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밤사이 굳게 닫혔던 창문을 활짝 여는 순간, 답답했던 내부 공기는 빠져나가고 신선한 바깥 공기가 실내로 유입되면서 환기가 됩니다. 

우리는 창밖 풍경을 보며 그날 날씨를 예측해 보거나 하루 일과를 그려 보고, 또 마감하기도 합니다. 나만의 집을 짓게 된다면, 큰 통 창문을 만들고 싶다거나 아치형의 예쁜 창문 모양을 내고 싶다는 창문에 대한 로망을 가지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림 투사검사에서 ‘창문’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HTP(House-Tree-Person)라는 그림 투사검사에서 창문은 나의 대인관계적 측면을 설명해 줍니다. 창문이 없는 집은, 대인관계에서 매우 방어적이거나 상당히 위축되어 있을 가능성을, 너무 많은 창문을 그린 경우에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가 커서 개방성이 지나치거나 타인이 수용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친밀해지고자 하는 경향성이 있다고 해석되기도 하죠. 물론 검사의 해석은 내담자의 다른 그림 검사 결과 및 면담 등 상담가의 종합적인 분석과 판단하에 이루집니다.

이처럼 ‘나’와 외부 대상, 자기 공개와 피드백이라는 측면에서 의사소통 유형을 창문 도식에 빗대어 설명한 유명한 심리학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조하리의 창’인데요, 이 모델은 심리학자인 조셉(Joseph)과 하리(Harry)가 공동으로 개발해서 자신들의 이름을 합쳐 ‘조하리’라는 명칭과 창문(window)을 합성해 지은 것이기도 하죠.

이 모델에서는 사람마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정도, 즉 자기 공개를 하는 수준이나 다른 이들의 비판 및 피드백에 대해 얼마나 열려 있는지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 나가는 데 있어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우리 집에 있는 창문을 수시로 오픈해서 외부의 공기나 빛을 더 많이 유입시키고, 때때로 다시 걸어 잠그고 차단하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타인과 유대를 맺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자기에 대해 오픈하거나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데 창구 역할을 하는 저마다의 창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하리의 창에서는 저마다의 창문에는 내가 나에 대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 남이 나에 대해 아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을 기준으로 네 가지 영역-① 공개적 영역, ② 맹목적 영역, ③ 숨겨진 영역, ④ 미지의 영역-이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① 공개적 영역(open area): 나도 알고 있고,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 나에 대한 부분입니다. 자기만의 뚜렷한 개성 표현이나 외현적 행동 혹은 대화를 통해 확연하게 드러나는 나에 대한 정보를 말합니다.

② 맹목적 영역(blind area): 나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은 알고 있는 나에 대한 부분입니다. 특이한 버릇이나 독특한 성격과 같이 자신은 미처 의식하지 못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눈치 채고 있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죠.

③ 숨겨진 영역(hidden area): 나는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에 대한 부분입니다. 사람들에게 굳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나의 취약점이나 의도적으로 숨기는 비밀의 영역입니다. 

④ 미지의 영역(unknown area): 나도 모르고, 다른 사람도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분으로, 개인의 무의식적인 측면에 해당합니다. 이 부분은 지속적인 자기 성찰이나 자기 탐색, 내면에 대한 관심과 전문적 상담 등을 통해 점차 알아갈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죠.

 

 

사람마다 타인을 향해 열려 있거나 닫혀 있는 혹은 타인의 피드백을 수용하는 정도에 따라, 이 창문의 모양과 넓이는 다를 것입니다. 다른 세 가지 영역에 비해 공개적 영역이 유독 크신 분도, 숨겨진 영역이 크신 분도 있겠지요. 단순히 어떤 영역이 큰 것이 더 좋은 거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대체로 인간관계가 원만한 분들은 공개적 영역이 큰 편에 속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누군가와 친밀해지거나 잘 소통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자기 공개와 자기표현이 요구되고, 다른 이들도 나에 대한 정보가 얼마만큼 있을 때 서로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줄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분들은 주로 앞과 뒤가 같은 사람, 예측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등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자기 공개의 측면이 너무 과해서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데 몰두합니다. 이런 분들은 또 상대방의 이야기는 잘 듣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안물안궁(안 물어보고, 안 궁금한)’한 이야기까지 마구 쏟아내다 보니 뒤돌아서면 ‘아차!’ 싶은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죠. 

반대로 어떤 분들은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숨겨진 영역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즘은 회사나 조금이라도 공적인 자리에서는 사생활에 대해 굳이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거나 궁금해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기도 하죠.

그러다 보니 상대방에게 인간적 관심이나 호감을 갖고 이를 표현하거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일들조차 망설이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물론 개인적인 친분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 질문이나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결례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나에 대해서는 하나도 오픈하지 않고, 상대방만 정보를 오픈하기 바란다거나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만 듣는 사람도 사람들에게는 으뭉스럽게 여겨지거나 비호감이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으니, 적당한 자기 오픈을 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 사이에 간극이 크다고 느꼈던 분들이라면, 다른 영역에 비해 맹목적 영역이 크신 분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이미지에 고착되어 있는 반면, 타인의 피드백은 잘 수용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타인의 건설적인 비판이나 진심 어린 충고는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를 돕고, 나를 성찰하는 기회가 됩니다. 따라서 맹목적 영역이 우세한 분들은 조금만 더 타인의 피드백에 열린 태도를 보이신다면, 스스로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 보탬이 될 것입니다.

물론 나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 하나, 이야기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거나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인간간계에 대한 회의감이나 어려움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순간이 온다면, 혹은 오랫동안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었던 분이라면, 그동안 나의 자기 공개 수준은 적절했는지, 타인의 피드백을 잘 수용해 왔는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은 어떨까요.

나만의 의사소통 스타일과 관계를 형성해 가는 기준이 존재하듯, 상대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의 소통 유형과 방식을 존중해 준다면,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기쁨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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