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는 정말 이모일까?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부르는 익숙한 호칭이 있습니다. 바로 ‘이모’라는 말입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싶을 때나 무언가가 필요할 때 ‘이모’라는 말을 흔히 사용합니다. 이 단어와 함께 ‘어머니’나 ‘사장님’이라는 말도 자주 사용하지요. 

이분들이 정말 우리 이모나 어머니, 혹은 가게 사장님이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중년 혹은 그 이상의 연배 정도로 보이시는 여자분께 실례되지 않으면서도 친근한 호칭이라고 생각되는 ‘이모’나 ‘어머니’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지요. ‘사장님’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는 주인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듣기 좋으시라고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호칭들을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어머니’라는 호칭은 상대방이 기혼의 자녀가 있는 여성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중년 여성이 반드시 기혼의, 자녀가 있는 분들일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분들이 ‘어머니’라는 호칭을 듣는다면 어떨까요? 아마 ‘나는 아직 미혼인데.’ 혹은 ‘나는 결혼은 했지만 자녀를 둔 적이 없는데, 내가 어머니인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를 일입니다. 

 

호칭이 특정 직업 뒤에 붙는 경우도 많습니다. ‘경비 아저씨’나 ‘청소 아줌마’ 등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런 호칭은 각각 남성과 여성이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해당 직업 특성상 더 익숙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해당 직업을 낮게 보는 사회적 인식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청소 여사님’이라는 표현은 ‘청소 아줌마’와 같이 기존에 청소 노동자분들을 하대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보다 존중의 의미를 담은 표현으로 흔히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청소 노동자를 숙련된 기술직 종사자, 직업적 전문성을 갖춘 사람으로서 보기보다는 성별에 더 초점을 맞춘 인상을 줍니다. 이런 한계를 해소하고자 한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사, 주임, 여사님 등 불분명한 호칭으로 불렸던 공무직 직원들의 호칭을 ‘실무관 ’으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비단 ‘어머니’, ‘이모’, ‘아저씨’ 라는 호칭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특정 연령이나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고 일반화된 호칭을 사용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그 호칭을 통해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의 개별성과 고유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MZ세대’라는 용어를 봐도 그렇습니다. 1980년대생인 밀레니얼(M) 세대부터 2000년대 이후 출생한 Z세대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이 호칭은 ‘요즘 젊은 애들’을 이야기할 때 많이 쓰입니다. 그러나 이 세대에 속한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MZ세대인지 의문을 갖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연 20대 후반과 40대 초반을 같은 세대로 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는 MZ세대의 특징을 희화화하며 개그의 소재로 삼고,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또, MZ세대와의 소통법에 대한 강의나 책들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연령, 성별 등을 기준으로 사람들을 유형화하고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동질적 집단으로 가정합니다. 성격유형 검사인 MBTI가 큰 관심을 받는 것 역시 이런 사회적 맥락의 영향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극이나 정보를 받아들일 때 가급적 쉽고 빠르게 파악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은 새로운 정보를 기존의 것과 비교, 분류, 유형화하며 일어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 정보의 틀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곤 합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럴 때가 많습니다. 특정 연령이나 성별, 인종, 국적의 사람에 대한 선입견이나 정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도 그대로 적용되기도 합니다. “프랑스 사람은 ~~해”, “여자는 ~~해”, “어린아이들은 ~~해”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이렇게 특정 대상에 대해 갖는 고정적 이미지나 표준을 ‘전형(prototype)’이라고 합니다. 

이런 고정관념이 부정적 방향으로 형성되고 강화될 때, 심하면 ‘혐오’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최근 중요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남혐과 여혐 같은 젠더 갈등,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둘러싸고 심화하고 있는 노인층에 대한 혐오 현상처럼 말입니다.

이런 혐오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의 동질적인 대상으로 가정하는 그 집단 안에 실은 서로 모두 다르고, 다양한 개개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집단 안에는 여성 혹은 남성, 노인, 어린이, 어머니와 같은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규정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당 집단에 대해 내가 가진 전형의 모습으로 그들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고정관념화하며 하나의 전형으로 규정할 때, 언젠가 나 역시 누군가에 의해 전형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익숙한 호칭,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에 대해 늘 질문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이 있지 않은지 호기심과 열린 자세를 가지고 대한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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