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적절함 - '더글로리'가 사이다인 이유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샘 글로리 봤어요? 사이다, 사이다, 사이다, 완전 사이다예요.’

상담실 내에서도 더글로리의 인기는 폭발적입니다. 학교 폭력과 관련된 기억이 있는 분들은 거의 대부분 더글로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더글로리의 사이다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저는 더글로리의 사이다는 ‘적절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폭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인 공격성에서 기원합니다. 이런 공격성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해

2. 권력과 지배성을 얻기 위해

3. 강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

4. 돈이나 사회적인 인정을 얻기 위해

5. 단순히 부정적인 감정을 분출하기 위해, 인간은 공격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런 여러 효용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비롯한 많은 동물들이 폭력을 대부분의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공격성을 자신들이 되돌려 받을 경우의 피해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폭력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만, 또한 폭력으로 인해 생명을 비롯한 모든 것을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은 위에서 언급한 양상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습니다. 위의 여러 가지 사회적인 의미가 복잡하게 섞여서 시작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학교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미묘하게 변질되어 일상이 되고 당연시되어 버립니다. 또한 청소년기라는 특수한 시기로 인해 가해자가 받게 될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끔찍한 학교 폭력을 행한 가해 학생에 대한 처벌은 피해 학생이 받는 피해에 비해 너무나 미미합니다. 때문에 학교 폭력은 집요하고 잔인하고 지속적이기도 합니다. 

문동은(송혜교)은 상상하기도 힘든 끔찍한 학교 폭력의 피해자입니다. 또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가장 친한 친구, 선생님 심지어는 엄마조차도 방관자이거나 가담자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양극단을 선택합니다. 트라우마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거나, 그런 트라우마를 준 대상을 동일시하며 또 다른 가해자가 됩니다. 

 

학교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이 둘 모두와 직접 면담을 진행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을 대상으로 학교 폭력에 대해 시행한 설문 조사가 있습니다. 이 설문 조사의 결과를 보면 위에서 언급한 극단적인 양상이 모두 나타납니다.

학교 폭력 피해자의 84.6%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와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 중 66.7%는 불안장애와 우울장애 역시 동반되며, 자살 기도를 더 빈번하게 시도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런 증상들은 꽤 오랜 기간 지속되며 술, 담배 등 물질 남용의 비율도 높았습니다. 이들 중 61.6%는 학교 폭력으로 인해 가족 및 또래 관계가 와해되었다고 느끼며, 외로움, 고립감, 불안전함, 불신, 배신, 복수심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다고 합니다.

다른 극단의 경우도 꽤 많은 비율로 나타납니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학교 폭력 이후에 반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거나 품행장애로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63%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연관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피해자가 가해자로 전환될 수 있냐는 질문에 70%가 가능성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 폭력 피해 후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대답이 전체의 90.2%,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환자를 만났다는 대답이 47.1%, 이 계획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려는 환자들 만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19.6%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학교 폭력 피해자가 살해 욕구까지 느끼는 것이 이례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5726명의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는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하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타살 사고 및 행동의 위험이 의미 있게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학교정신건강의학회 설문 조사 참고).

 

 

문동은은 양극단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트라우마에 묻혀 버려서 삶이 무너져 버리지 않았습니다. 복수에 대한 의지로 그 어려움을 이겨 냈습니다. 하지만 그 큰 복수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복수에 대한 심연에 잡아먹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해자가 되거나 살인자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연진아 내 세상은 온통 너야.’

복수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복수가 자신의 전부인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감정을 우선시하고 잘못된 일들의 원인을 전부 외부의 탓으로 즉,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렇게 피해자는 가해자가 됩니다. 하지만 문동은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문동은은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문동은이 복수에 대한 심연에 잡아먹히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사람입니다. 복수의 길을 함께 걸어가 주는 주여정(이도현)을 통해 신뢰와 사랑을 느낄 수 있었고, 복수의 조력자인 강현남(염혜란)을 통해 웃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예솔을 통해 순수함을 볼 수 있었고, 하도영을 통해 바름과 배려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세상을 망가뜨려 버린 주체도 사람이었지만, 세상을 살 만하다고 느끼게끔 해준 주체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문동은은 복수의 화신이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분노의 화신이 되어버린 문동은을 봤다면, 복수의 심연에 빠져버려 자신의 폭력과 살인을 남 탓으로 정당화하는 문동은을 봤다면, 일순간의 복수에 잠깐은 속이 시원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찜찜함과 아쉬움은 가슴에 남겨 둬야 되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복수를 위해 마음속 분노와 억울함, 배신감, 모욕감, 수치심 등의 온갖 폭력적인 감정들을 담담한 말투와 분위기로 담아낼 수 있었던 적절함, 자신의 복수를 위해 관련되지 않은 타인을 다시금 폭력의 굴레에 밀어 넣지 않은 행동의 적절함, 자신의 복수를 위해 가해자가 되고, 살인자가 되어 스스로 악마가 되지 않았지만 적절한 상황이 마련되자 가해자들끼리의 자중지란으로 복수가 완성되는 장면들,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야지 된다는 마음속 소망이 제대로 실현된 모습들이,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사이다를 제공해 준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선도 있지만, 악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도 있지만,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문동은이 한창 복수에 대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세상의 좋은 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을 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속 심연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실 속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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