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삶이 지겹고 버겁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저는 군대를 재작년에 제대하고 나서 복학했습니다. 당시 코로나 시국이라 온라인 강의를 들었고, 집중이 너무 안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영어 강의도 있었습니다. 강의에 집중이 너무 안 되니 여러 번 돌려 봤고 30분짜리를 한 시간 반을 듣는 등 솔직히 체력적으로 지쳤습니다. 제가 바보 같았습니다. 집중을 못해서. 

그리고 아버지가 취업을 위해 회사를 알아보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셔서 압박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 생활만 반복하고 나가지는 못하니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부터 제가 서울에서 혼자 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했고, 이에 아버지가 분노했습니다. 이때 저는 솔직히 죽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무서웠으니까요. 어머니가 다행히 중재해 주셔서 서울에서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제가 좀 떨어져 있으면 제가 스트레스를 덜 받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죠. 맞는 판단이었고, 스트레스가 줄긴 했습니다. 

그때부터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친구가 많이 없어 외로웠습니다. 친구가 없었던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배신당하거나 실망했기에, 많은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작년 1학기와 여름방학은 참 외롭고 괴로웠습니다. 속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어 외로웠고, 부모님의 취업 압박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쌓여 공부가 안 됐습니다. 

다행히 지난해 2학기에는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좀 호전되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조금씩 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저도 점점 좋아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4학년이 되면서 친구들은 졸업하고, 현재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스트레스가 너무 쌓여 버겁습니다. 여전히 온라인 강의에 집중하지 못해 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고, 할 일은 많은데 제 몸과 마음이 제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 없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취업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어 심리적으로 너무 부담됩니다. 제가 취직을 못했을 경우 아버지가 얼마나 분노할지 두렵습니다. 만약 제가 취직을 못하면 지금껏 저에게 쓴 돈을 아까워하고 화를 내실 것 같아 아버지 돈도 가능한 한 많이 쓰지 않으려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재수를 했고, 재수 이후에는 휴학을 하고 싶었습니다. 재수에 모든 걸 불태웠으니까요. 그러나 휴학은 시간이 없어 하지 못했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도 저는 다 때려치우고 쉬고 싶습니다. 솔직히 저는 제가 뭘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감각과 감정들을 잊은 것 같습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부러우면서도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데, 솔직히 무섭습니다. 그래서 주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도 지겹고 지쳐서 부딪히기가 싫습니다. 

그리고 제발 공부에 집중하는 법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차피 해야 하는 공부인데 시작도 하기 어렵고, 집중도 너무 안 됩니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려고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몸이 배배 꼬이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하나도 되지 않아 지칩니다. 지겹고요. 도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발 저에게 해답 좀 알려 주세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학업에서의 집중력 문제와 더불어 취업에 대한 높은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인해 현재 심적으로 많이 괴로운 상태이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안 그래도 취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이실 텐데, 아버지께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으로 강하게 압박하고 계시니 얼마나 부담이 되실지 사연자님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심리적인 압박감과 스트레스 수준이 높을수록 당연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온라인 강의에도 집중해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합니다. 학업에 집중을 잘하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취직을 해야 하는데, 당장 집중하기도 어렵고 취직을 할 수 있을지, 또 왜 취업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부러우면서도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할까?’라는 생각도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으시네요.

현재 사연자님의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 불안과 두려움까지…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더욱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이지 않을까 짐작됩니다. 사연자님께서 공부에 집중하려 해도 이런 수많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떠다니다 보니 정말 필요하고 생산적인 곳, 이를테면 학업이나 미래를 위한 현실적인 계획과 준비들을 하기 위해 정신적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는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사태가 발생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의 진짜 걱정은 무엇이고, 원하시는 일이나 삶이란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정리해 가는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일단, 아버지께서 취직에 대한 압박감을 가중시키는 상황인 만큼 한동안은 아버지와 관련된 생각과 감정은 머릿속에서 제쳐 두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만약 어떤 식으로든 취업에 대한 아버지의 압박이 지속된다면, 지금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감정과 생각을 간결하고 단호하게 표현하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께는 “아버지께서 걱정하시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런 표현들이 부담감으로 다가와서 제가 마음이 더 무거워집니다. 저를 믿고 기다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또는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취업에 대한 압박과 재촉보다는 격려와 지지입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 

아버지께서 사연자님의 이런 솔직한 마음조차 수용하시기 힘든 상태시라면, 어머니 혹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연자님의 의견을 전달하고, 사연자님의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잠시 연락을 유보하는 것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일단은 아버지께서 가하는 심리적 압박감으로부터는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게 지금 시점에서는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사연자님께서 사연에 적으신 내용을 보면, ‘취업을 해야 하는데, 왜 해야 하는지 솔직히 모르겠다.’라고 말씀해 주고 있지만, 사연자님께서 정말 왜 취업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취업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지금으로서는 많이 버겁게 느껴지고, 또 취업을 한다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사람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지 등등 많은 걱정들이 앞서시는 것 같습니다.

학업을 마친 성인이 취직이든 사업이든 노동을 통해 자신의 생계를 꾸려 나가는 것은, 응당 자기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또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내 삶의 자유와 권리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역할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법이지요. 지금 사연자님께서 하시는 고민과 그 과정에서 느끼시는 두려움과 혼란감은 어쩌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되는 감정과 고민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걱정과 두려움은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시도하는 데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니 사연자님의 마음속에 많은 걱정과 불안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되, 그런 생각과 감정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취업을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하고 우선적인 과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 전에 사연자님의 인생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보셨으면 합니다. 지금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전공과는 무관하지만, 자신의 재능이나 관심사를 펼칠 수 있는 분야가 있는지 말이죠.

눈앞에 보이는 학업이나 취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만 몰두하거나 집착한다면, 의욕을 잃거나 지치기가 쉽습니다. 이럴 때는 10년 뒤, 20년 뒤 사연자님께서 바라는 인생의 그림을 그려 보시고, 취업을 하거나 일을 하는 것은, 이러한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 나가는 데 필요한 하나의 구성 요소라고 생각해 보신다면 취업에 대한 부담감이나 무게감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네요. 

 

또 사연자님께서 그리시는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 특히 당장 학업과 관련해 매일 목표로 한 부분을 다 달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을 질책하거나 포기하기보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인정하면서 적절한 보상을 해 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잃지 않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학업 목표나 계획을 세울 때는 일정을 세분화해서 중요하거나 어려운 공부나 일들을 먼저 할지, 아니면 좀 더 쉽고 가벼운 공부나 일들을 나중에 할지, 자신의 컨디션과 상황에 따라 맞는 스타일대로 하신다면 보다 높은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학업에 집중이 되지 않고 잡념이나 걱정거리가 계속해서 떠오른다면, 가령 하루에 걱정하는 시간을 20분 정도 정해 놓고, 마음껏 걱정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 시간 동안 잡념이나 걱정을 하기로 마음먹고 걱정 시간이 끝나면 다시 해야 할 일에 집중해 보는 것이죠.

너무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는다고 많은 분량을 학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사연자님께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평소에 잘 인식하고, 중간중간 환기를 위해 짧은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집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요.

또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걷기도 몸과 마음을 환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마음먹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는 데는 무엇보다 튼튼한 체력과 질 좋은 수면, 영양가 있는 식단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도 신경을 쓰신다면 좋겠네요.

 

당장 너무 열심히 하지 않으셔도, 다양한 경험을 하지 않으셔도,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런 것들은 애써 당장 사연자님께서 시도하지 않으셔도, 인생이라는 기나긴 항로를 여행하면서 좋은 인연이나 경험도, 조금 쓰라린 인연이나 경험도 하게 되는 날이 오실 거예요. 그럴 때 피하지 말고 기꺼이 그런 인연과 경험들을 겪어 내신다면 인생의 기쁨도, 인간적인 성장도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오늘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적당히 조율하고, 적절한 휴식과 학업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 나간다면, 사연자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가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런 사연자님의 발걸음을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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