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모든 걸 제 탓으로 돌리는 남편,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남편이 우울감이 심해요. 비난, 욕설, 몇 번의 손찌검, 음식 거부, 수면장애, 자살 사고, 충동적인 언행 등등. 이런 증상들이 매일 이어지지는 않아요. 저랑 말다툼이 있거나 싸운 이후에 이런 증상들을 보여요. 

문제는 저예요. 본인이 이렇게 되는 원인이 저에게 있다고 정말 강력하게 믿고 있거든요. 어렸을 적 순탄치 않은 부모님과 관계로 인해 성인이 된 지금 부모님과 연을 끊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 부모님께 억압당하며 커서 감정적인 부분을 많이 억누르고 살았다고 해요. 자기 부모처럼 되기 싫다며 한 번 사는 인생 우리가 열심히 살아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성공하자며, 어느 순간 유튜브 등 좋은 강의 및 영상들을 달고 살기 시작했어요. 

자기 신념이 굉장히 강하고,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서 그런 신념들을 더 다지게 됐대요. 강한 신념을 갖는 게 성공하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신념을 갖는 거… 당연히 좋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제가 느끼기엔 그런 것들을 강요당하는 느낌이 들고, 매번 알려주고 보내주는 영상들, 조언들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남편은 함께 성장하기 위해 같은 페이지 위에 있을 수 있도록 저에게 모든 정보를 주고 싶었대요. 천성이 털털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타고난 제 성격이 문제가 되었어요. 제 딴에는 흉내라도 내보려고 하는데, 본인이 생각하기에 사소한 부분도 제가 잘 해내지 못하고, 핑계 댄다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존중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나 봐요.

그러면서 어느 순간 2주 간격으로 싸우기 시작하고, 한 번 싸우면 앞에 언급한 그런 무서운 증상들이 나타나고, 저는 그게 너무 괴롭습니다. 아이들한테도 미안하고, 무섭기도 해요. 아직 둘째 아이는 이제 돌쟁이예요.

모두를 생각해서 부부상담 이야기도 조심스레 꺼내 보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저에게 있는데 제가 아무런 노력을 안 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건데 시간 낭비하게 그런 걸 왜 받느냐고 화만 내네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게 하고 싶은데, 문제는 본인 입장에서 제가 원인 제공자라고 언급하며 욕설을 내뱉고, 제가 모든 걸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생각해서, 전문가의 도움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죽여 버린다고도 해서 어떤 식으로든 꺼내기가 두렵습니다.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어떠한 조언도 좋습니다. 정말 절실하게 부탁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사연을 읽으며 사연자님은 물론 자녀분들이 걱정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남편분께서 사연자님을 향한 비난과 욕설, 또 손찌검까지 있으셨다고 하니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염려됩니다. 또 그런 가정폭력에 노출되었을 자녀분들을 생각하면 꽤 심각한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어린 자녀분들에게 부모의 고성과 폭력이 오가는 장면을 목격하는 것은 큰 트라우마로 남고, 이후에 건강한 정신적 성장을 이루어 나가는 데 큰 상처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남편분과 사연자님께서는 명확히 인지하고 반드시 바뀌셔야 합니다.

문제는, 이런 고민글을 올려 주신 분이 가장 변화가 필요한 당사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안타깝습니다. 남편분께서 자신에게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이 있고,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어쩌면 남편분께서도 자신이 보이는 폭력성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이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해서 사연자님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계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없어서 나의 잘못을 마치 남의 잘못인 양 ‘남 탓’으로 돌리는 것을 방어기제 중에서도 ‘투사’라고 합니다. 남편분께서는 현재 이 투사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계신 듯 보입니다.  

 

남편분께서 폭력 행위와 언어폭력, 비난 등을 하는 이유가 ‘사연자님께서 남편분이 원하는 수준만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말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것이 상대를 비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두 분 모두 분명하게 인지하시고 남편분께 다시는 그 어떤 폭력 행위나 언어폭력도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메시지를 단호하게 전하셨으면 합니다. 또 자녀들 앞에서 심하게 부부 싸움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아야겠지요. 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사연자님의 단호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시 사연자님께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수 있으실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여러 가지 방안을 두고 검토해 보셨으면 합니다. 

먼저, 언어폭력과 실제적인 신체 폭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연자님과 자녀분들의 안전을 위하여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가 보인다면, 남편분과 하던 논쟁을 중단하고 가능한 한 빨리 물리적으로 그곳을 벗어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이를테면 남편분의 언성이 높아지거나 날카로운 언사가 오갈 때, 언어폭력과 신체 폭력에 노출되기 전에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간적으로 분리하시라는 말씀입니다. 공간적인 분리가 어려운 상황이나 실제적인 위협을 강하게 느끼신다면,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사연자님과 자녀분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입니다. 

그런데 분노가 폭발하고 많이 흥분된 상태에서는 남편분께서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사연자님께서 그 자리를 벗어나거나 공권력의 도움을 청하는 상황이 생길 경우, 그런 행동이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왜곡된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 마음이 진정된 상태에서 사전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남편분의 분노 폭발로 인해 가족들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욕설을 하는 것은, 엄연한 가정폭력이며, 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받을 깊은 상처와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 가족 모두가 그러한 상처를 회복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 등등.

그래서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사연자님께서 자신과 자녀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남편분께 명확하게 의사 표현을 하시는 겁니다. 남편분께서 이런 조치와 경고의 메시지에 반발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폭력성에 있어서는 굳이 남편분의 동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요.  

 

 

사연자님께서는 남편분께서 우울감이 심하며, 그에 따른 증상들, 비난, 욕설, 손찌검, 음식 거부, 수면장애, 자살 사고 등을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중 수면장애나 자살 사고 같은 것들은 우울 증상일 수 있지만, 비난이나 욕설, 손찌검 같은 것들은 우울증이 있다고 해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감정 조절이나 통제력을 잃고, 분노 폭발 혹은 분노 발작을 일으키는 것에 가깝습니다.

분노 폭발이란,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폭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남편분께서 어릴 적에 부모님께 많이 억압당하며 감정적으로 상당히 억누르며 살아오셨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유독 감정 조절에 미숙하고,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생각하신 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통제의 고삐를 풀고 격한 감정으로 분출되는 것이지요. 또 만약 남편분의 부모님께서도 자주 욱하며 분노를 폭발하는 모습을 보이셨다면, 그런 부모의 모습이 너무 싫으면서도 무의식중에 욱하는 행동을 습득했을 수도 있고요.

그러나 그 방식이 적정선을 넘어서서 가장 아껴 주어야 할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심각한 문제 상황이자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남편분께서 아내분에게 함께 행복을 찾고 성공을 하자며 재촉하는 것은,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고 싶은 통제감을 획득하려는 처절한 시도로 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연자님께서 자신의 기대만큼, 혹은 원하는 만큼 변화가 눈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통제감을 상실했다는 생각에 좌절감과 무력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또 사연자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노력해 주지 않으니, 자신을 무시한다거나 모욕당했다고 생각해서 깊은 수치심을 느끼면서 분노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짐작됩니다. 이것은 분명 비합리적이고 왜곡된 사고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해서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반드시 내가 원하는 만큼 따라와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왜곡된 사고로 인해 수치심이 과도하게 자극되는 경우에, 무척 괴롭고 견디기 힘들다고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수치심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남편분께서 이러한 자기 성찰과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또 분노 폭발이 이미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깨닫고 당장에 폭력적인 행동이 사라질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남편분의 폭력성이 가족분들에게 끼치는 피해와 파괴적인 측면이 크기 때문에 하루빨리 없어져야 할 행동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이 엿보입니다.

가장 빠르게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전문가의 도움과 치료적 접근입니다. 전문가의 면밀한 진단과 도움을 통해 필요하다면 충동을 조절하는 약물치료를 받으실 수도 있고,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왜곡된 사고와 자동적 사고 등에 대해 탐색해 보면서 통제력을 되찾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한 상담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남편분께서 전문가의 도움을 거부하고 있으므로 당장은 자발적으로 치료를 받으시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따라서 남편분께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하기보다는 현재 겪고 있는 수면장애나 자살 사고 등이 특히 걱정되고, 우울감이 심한 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뇌의 호르몬 이상으로 유발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쪽으로 설득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특히, 남편분의 폭력적인 행동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을 현재 가정에서 재현함으로써 자녀분들에게도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대물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경각심을 일깨워 주시는 것도, 남편분이 변화해야 한다는 굳은 결심을 다지는 데 자극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분노 상황에서 분노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대표적인 방법과 평소에 분노를 어떻게 다루고 관리하면 좋을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 드리는 것으로 이번 사연에 대한 답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감정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남편분과 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함께 노력해 보자고 제안하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 분노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대표적 방법

1. 감정적으로 화가 나거나 충동이 일어난다고 느끼는 지점을 포착한다.

2. 상황에서 벗어나거나 대화를 잠시 중단한다. (예)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잠시 벗어납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도 좋습니다. (1과 2가 가장 중요한 지점입니다. 화가 일어나는 시점에서의 신체 감각이나 반복되는 반응을 포착하는 연습이 도움이 됩니다.)

3. 마음으로 천천히 1부터 10까지 숫자를 센다.

4. 충동이 조금 가라앉는다면 심호흡을 한다. (심호흡의 경우 이완요법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호흡을 가슴이 아닌 배로 한다고 생각하고 숨을 들이쉰다.

  - 너무 깊은 숨을 쉬지 말고 편안한 정도로 한다.

  - 호흡을 하면서 신체의 부위를 마음의 눈으로 보면서 위축된 부분을 이완시킨다.

 

□ 분노 관리 교육을 받아라

1. 행동을 바꿔라: 타임아웃 시간을 갖거나 분노가 사그라질 때까지 쉬었다가 자신을 화나게 한 상황으로 돌아가 문제를 합리적인 태도로 다루는 것이다. 공정한 싸움은 진정된 상태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으면서 긍정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2. 생각을 바꿔라: 부정적이거나 역기능적인 핵심 믿음이나 인지 도식을 검토하며 과연 그것이 합리적인 생각인지 점검하고 긍정적이고 기능적인 믿음이나 도식으로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3.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꿔라: 전통적인 심근 완화 요법, 명상, 요가, 숨쉬기 운동 등 다양하며, 제대로 하려면 많은 연습과 반복을 해야 한다. 이 방법은 분노를 예방하고 억누르는 데 효과가 있다.

4. 정신을 바꿔라: 분노 관리가 갖는 의미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기술 몇 가지를 알려주는 것 이상이다. 자신의 삶을 오래도록 깊이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모쪼록 사연자님과 자녀분들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하며, 사연자님의 가정에 차차 평화가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