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능력, 인간의 전유물일까?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바야흐로 ‘공감의 시대’입니다. 현대인들에게 공감 능력은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한 필수 요건으로 생각될 만큼,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 곤욕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특히, 부모님이나 배우자처럼 매일 볼 수밖에 없는 가까운 사람이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 “내 마음을 잘 몰라준다.”며 답답함과 서운함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오늘날 공감 능력은 지적 능력만큼이나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질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공감(sympathy)’이라는 말의 어원은 19세기 말 독일어 ‘Einfühlung’에서 시작됩니다. Ein(안에)과 Fühlen(느끼다)이 결합된 말로, 미학에서 ‘들어가서 느끼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어에서는 이 ‘Einfühlung’을 나중에 ‘empathy’로 바꾸었습니다. empatheia는 안을 뜻하는 en과 고통이나 감정을 뜻하는 pathos의 합성어로, ‘안에서 느끼는 고통이나 감정’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공감이란,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 내부로 옮겨 와 이에 동조하고,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심적 상태’를 뜻합니다.  

이러한 공감 능력은 유아가 주양육자와 상호작용하며 안정된 애착을 형성해 나감으로써 발달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모와 아이 간에 충분히 교감하는 시간을 가지며,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읽어 주는 양육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 주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이의 공감 능력도 어느 정도 잘 발달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공감 능력이 유아기 때 모든 발달을 멈추는 것은 아니며, 다양한 관계와 경험 속에서 충분히 길러질 수 있다는 것은 꽤 희망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인간만이 다른 대상에게 공감할 수 있는 걸까요? 미국 브라운대학교의 러셀 처치(Russell Church) 교수가 한 실험에 따르면, 설치류인 쥐들도 다른 쥐들이 고통받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공감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고 합니다. 이 실험에서 쥐들은 막대기를 눌러 먹이를 먹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런데 막대기를 눌렀을 때 눈앞에 있던 쥐에게 충격을 가해지는 것을 목도한 쥐들은 더 이상 막대기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수족관에 키우던 한 쌍의 흰동가리 중 안타깝게도 한 놈이 용궁행으로 떠나기 직전에 비실대고 있을 때, 나머지 한 놈이 자기 짝의 머리 앞에 먹이를 물어다가 놓아 주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던 가슴 뭉클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다른 대상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공감 능력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만이 가지는 정신적 전유물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공감이란, 많은 경우 정서적 차원의 공감에 치우쳐 있습니다. 정서적 공감이란, 가장 원시적인 공감의 형태로 상대의 고통이나 감정에 무의식적으로 동화되는 것을 뜻합니다. 

이는 우리에게 ‘거울신경망(mirror neuron network)’이라는 공감의 신경망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뇌 속에는 거울뉴런이라는 신경망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자세 등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하며, 타인의 고통이나 감정에 자동으로 반응함으로써 감정이 전염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울뉴런은 다른 동물들도 갖추고 있어, 앞서 소개된 다른 쥐의 고통에 공감하는 쥐들의 행동이나 죽음을 앞둔 짝지 흰동가리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행위를 설명해 줍니다. 이처럼 정서적 공감이란, 비록 의식이 작용하지 않는 낮은 차원의 공감이지만, 가장 본능적이고도 더 높은 수준의 공감을 위한 기본 토대가 됩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공감 능력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좀 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인 인지적 공감과 행위적 차원의 공감에 있습니다. 여기서 인지적 공감이란, 상대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는 나와 상대가 서로 다른 관점과 마음일 수 있다는 인지적 인식에서 비롯되며, 동물들과 달리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에게 ‘정신화 신경망(mentalizing neuron network)’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정신화(mentalizing)를 통해 자신은 물론 타인의 마음 상태에 초점을 두면서 내적 경험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거울신경망 덕분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정서적 공감을 할 수 있는 것과 달리, 정신화 신경망은 성장 과정에서 그 발달이 이루어지므로, 사람마다 인지적 공감 능력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군가가 심각한 고민을 털어놓거나 고통스러워할 때 섣불리 나서서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려 하거나 당사자보다 더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정서적 공감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지적 공감 능력은 떨어지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위적 차원의 공감이란, 필요한 경우 적절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위로와 도움을 제공하는 현실적이고도 실천적인 공감의 행위를 뜻합니다. 예를 들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가 많이 다친 아이를 지켜보며 단순히 “아휴, 많이 아프겠구나!”라고 공감해 주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필요한 경우 실제로 도움을 주는 것이 바로 행위적 차원의 공감에 해당하는 것이죠.

 

사람마다 힘들 때 위로를 느끼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상대가 그저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 주는 것에서, 또 누군가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을 통해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위로를 느끼는 방식이 다르듯,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과 그 깊이는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의 공감 능력은 노력을 통해 얼마든지 발달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보세요. 혹시 유독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분은 없으신가요? 어쩌면 거창한 위로나 공감의 말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말 한마디의 작은 위로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여러분의 곁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힘든 일은 없니”, “밥은 잘 먹고 다니지?”, “아픈 곳은 없고?” 이렇게 안부를 물으며 누군가의 하루와 마음에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공감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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