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아내와 교육 갈등에 대해서 풀어 보고 싶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아내는 교육열이 높습니다. 저는 그보단 좀 덜합니다. 저희 아이는 남자아이이며, 부모의 말을 잘 따르고 이해하는 순둥이입니다. 저와 아내는 맞벌이입니다. 퇴근하고 올 때까지는 부모님이 잠깐 돌봐 주시는데, 그간엔 아이는 만화도 보고, 닌텐도 게임도 하고 놉니다.

아내가 항상 먼저 집에 오기에, 아내가 퇴근하고 돌아오면 아이를 붙잡고 종종 공부를 시킵니다. 저희 아이는 종종 스스로 공부합니다. 하루에 해야 하는 학습지가 4권이면 종종 스스로 아내 퇴근 전에 짬 나는 시간에 풀어 놓곤 합니다.

문제는 오늘이었습니다. 아내는 스스로 공부를 해 놓은 아이를 붙잡고, 새로운 학습지를 더 하라며 시켰고, 아이는 순순히 했습니다. 그런데 학습지가 끝나자 피아노 연습을 하라며 시켰고, 아이는 또 순순히 했습니다. 약 3~40분을 그렇게 했습니다.

아이는 대놓고 말은 안 했지만 시무룩하거나 하기 싫지만 억지로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아이가 이미 스스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시키고자 하는 엄마의 교육열이 공부에 대한 흥미나 의욕을 오히려 망가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정해진 분량이나 규칙도 없이 엄마의 기분에 따라 공부 분량이 정해지고, 공부가 끝나자마자 피아노까지 시키는 그 행태가 아이의 정서 발달이나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느끼는 데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 생각이 맞다면 아내와 싸워 이겨야 하는 건지(기본적으론 끈질긴 대화가 되리라 예상됩니다. 아내가 꽤 욱하고 다혈질이라 필요하다면 부부 싸움 까지 고려해서), 막 두세 시간 동안 하는 너무 과하지 않은 교육이고, 교육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거나 체벌을 하지 않는다면, 아내의 교육을 지켜보고 나서 아이에게만 따로 잘했다 다독여 주고, 스스로 한 노력과 참아 낸 아이를 칭찬하고 격려해 줘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정서적으로 더 안정된 아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관점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녀의 교육, 그중에서도 학습과 정서 발달에 대해 고민 중이신 듯합니다. 특히 아내 분께서 자녀에게 학습을 시키는 측면에 있어서 아이의 주도성 발달이나 성취감을 키우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을지 염려가 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제각각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심리 발달 측면이나 정신건강 영역 역시 개인의 타고난 기질이나 발달의 역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양육이나 교육에 있어서 모두에게 적용할 만한 정답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의 성장 및 심리 발달 과정 역시 해당 연령대에 따라, 또 아이의 특성이나 현재 상태에 따라 양육 방식이나 훈육 방법도 각기 달리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사연상으로는 자녀분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어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 양해 부탁 드립니다.

추측건대, 학령기 아동 중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현재 사연자님 부부께서 맞벌이다 보니 두 분이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는 조부모님께서 자녀분을 케어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때까지 아이는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시간이 많지 않은 워킹맘인 만큼 집에 돌아오면 아이가 그날 해야 할 학습 분량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자녀의 학습 진도를 관리하고 계신 것 같고요.

지금까지는 순한 기질의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에 큰 불평불만 없이 기특하게도 잘 따라 주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실 아이에 따라 수용 가능한 학습 분량은 천차만별일 것입니다. 따라서 ‘초등 저학년 때는 어느 정도 시간의 학습이 필요’하고, ‘중학생일 경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는 식의 구체적인 학습 방식이나 학습 시간에 대해 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으니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사연자님께서 고민 중이신 자녀의 안정적인 정서 발달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연에서 중점적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아이의 학습과 관련한 주도성과 성취감을 키워 나가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높은 교육열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을 만큼 과열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는 대학 입시 제도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겠지요. 소위 교육열이 높다고 하는 부모님들은 아이를 어릴 때부터 학습과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부모와 독립된 인격체라는 사실을 먼저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면, 자녀의 인생을 부모의 뜻대로 설계하거나 언제까지 정해 주는 일과대로 아이가 살아갈 수는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물론, 자녀가 학생이고, 학생의 본분 중 하나는 학교 공부를 성실히 해 나가는 것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의 목표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하고, 자신이 정한 꿈이나 목표를 향해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아이는 학습을 통해 주도성과 성취감을 발달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매번 부모님께서 학습 분량을 정해 주고, 검토하는 방식은 아이의 주도성과 성취감 발달에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죠. 

학습과 관련해 어떻게 아이의 주도성과 성취감을 길러 줄 수 있을지는 사연자님과 아내 분께서 한 번 대화를 통해 우리 자녀에게 적합한 방법을 찾아 보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자녀와 함께 현재 스스로 학습 가능한 분량에 대해 계획을 세워 보고, 그날그날 잘 실천해 나갔을 때 충분한 칭찬과 격려, 지지 및 적절한 보상을 해 주는 식으로 아이의 성취를 인정해 주고 동기를 자극해 주도성과 성취감을 발달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두 번째는 사연자님께서 가장 궁금해하시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키우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어떤 아이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잘 발달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내의 따뜻하고 수용적인 분위기일 것입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녀를 존중하고, 자녀의 의견에 귀 기울여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방어적이 되지 않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존중하고, 내면에 충실한 아이로 성장해 나가게 됩니다.

그러니 학습은 물론이고 여러 생활적인 면에서도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나 통제보다는 아이에게도 주도권을 주고 솔직한 자기 의견과 감정을 부모님께 이야기하고, 또 상호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부모님께서 사사건건 자녀의 행동에 간섭하거나 지시하고, 평소 비판적 태도나 지나치게 자녀를 통제하려 든다면, 자녀는 자신이 뭔가 많이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 나가기 어렵게 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아내분의 교육 방식과 관련해 사연자님의 생각이 맞다면 부부 싸움까지 불사하며 이겨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아내분과 정말로 싸우시겠다는 의미는 아니시겠지만, 만약 자녀분의 교육 방식을 두고 아내분과 계속해서 갈등이 발생하거나 불일치하는 의견을 보일 때 자녀분에게 미칠 안 좋은 영향력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해 볼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그런 모습을 자녀분이 많이 보게 된다면, 의도치 않게 아이는 ‘나 때문에 두 분이 싸우는구나.’ 하는 불필요한 자책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무엇이 옳은 것인지, 정작 나의 문제인데 나의 의견은 우선시되지 않거나 배제된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무기력하게 느껴지거나 혼란감과 불안감이 자극될 수도 있어요. 

따라서 자녀 양육 문제나 교육관에 대해 아내분과 누구의 말이 맞는지, 이분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지기보다 자녀에게 어떤 바람직한 가치관을 심어 주고, 어떻게 하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지 큰 틀에 대해서 부부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으며 힘을 모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녀분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자녀분은 부모님께서 상호 간에 의견을 나누고, 합의점을 찾아가고,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부모의 역할, 예를 들면 깨끗이 씻기고, 좋은 음식을 먹이고, 학습을 잘 지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자녀와 활발하게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아이를 뒤처지지 않게 잘 기능하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만 골몰하다 보면, 아이와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며 웃고, 친밀감을 나누며 교감하는 일들에는 자칫 소홀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가 인생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할 때 아이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내면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들은 바로, 이러한 일상의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자양분입니다.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실로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어느덧 훌쩍 자라 있는 모습에 놀라게 됩니다. 그러니 비록 하루하루 바쁜 일상에 지치시겠지만, 평범한 일상에서 자녀분과 교감하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 나간다면 사연자님께서 원하시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또한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시는 사연자님의 모습에서 이미 최선을 다하는 좋은 부모님일 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되어 본 적이 없지만, 부모는 아이였던 적이 있기에 조금만 동심을 되살려 보면 자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교감하면서 사연자님의 하루하루도 자녀와 함께 성장하며 기쁨이 가득한 날들이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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