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관계] 타인이 세운 경계선을 침범하고 있나요?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에게 흔히 ‘집’은 단순히 먹고 자는 물리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들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외부의 침입을 걱정하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구애 없이 편안한 휴식을 취합니다. 또, 집 안에서도 가족 구성원 개개인은 ‘방’이라는 또 다른 개인적 공간을 가지며,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해 줍니다. 만약 다른 가족의 방에 들어갈 일이 있으면, ‘노크’를 통해 예의를 갖추며 암묵적인 허락을 구합니다.

이렇듯 가장 친밀하다고 할 수 있는 가족 사이에도 우리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에서 함부로 사적인 공간을 침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거실’이나 ‘주방’과 같은 공용 공간에서 서로 소통하며, 따로 또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죠.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어떨까요? 비록 눈에 보이는 물리적 경계는 없을지라도,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경계선, 즉 바운더리(boundary)가 존재하며, 이것이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살면서 맺게 되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타인과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려면 자신은 보호하면서 사람들과 친밀감을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데는 적당한 자기 개방과 상대에 대한 수용이 요구되지요. 나와 사람들 사이에 유연한 경계를 세움으로써 상대가 과도하게 간섭하거나 지나친 요구를 해 올 경우 스스로를 잘 방어하고, 나에게 유해하지 않은 주변인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상호 호혜적 관계를 이어 갈 수 있다면, 건강한 바운더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에 더해져 애착 손상과 자아 분화에 이상이 생기면, 나와 타인 사이에 건강한 경계를 세우지 못하고, 거리 조절에 실패하면서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애착 욕구가 결핍될 경우, 어떤 사람은 애착 대상에 의한 거듭된 거절과 그로 인한 좌절감을 견디기 힘들어 일찍부터 애착 대상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애착 욕구를 과도하게 추구하면서 자꾸만 타인의 경계를 침범하는 관계의 패턴이 고착되기도 하죠.

이렇듯 애착 손상이 사람과의 관계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다가가고 관여하려는 패턴으로 나타나는 이들은 ‘탈억제형(disinhibited type)’에 해당합니다. 이들의 성향은 대부분 외향적이거나 공격적인데, 애착 손상으로 인해 불안감이 증폭되면서 타인에게 과도하게 접근하여 심하게 간섭하거나 경계를 침범하는 식으로 부적절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탈억제형 중에서도 자아가 미분화된 유형은 ‘돌봄형’, 자아가 과분화된 유형은 ‘지배형’의 관계 패턴을 보이기 쉽습니다. 먼저, 돌봄형은 누군가를 돌보는 데서 삶의 이유와 기쁨을 느끼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자기 돌봄은 등한시하고 다른 이를 돌보거나 책임지는 데 거의 모든 에너지를 쏟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돌봄을 받는 대상 역시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흔히 자녀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항상 부모가 대신해 주거나, 자녀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서서 해결해 주는 부모님이라면, 자신이 혹시 이 돌봄형에 해당하는 유형이 아닌지 성찰해 보셨으면 합니다. 

주로 돌봄형의 관계에 고착된 분들 중에서는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누군가를 돌봐야 했던 마음 아픈 과거가 있던 분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치 누군가를 책임지거나 돌보는 일이 관성처럼 작용해, 누군가를 돌봐야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에서 만족감과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다 보니,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몹시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타인을 위해 헌신하며 타인 중심적인 삶을 사는 것은, 건강한 상호 의존이 아니라, 병적인 ‘공동 의존(co-dependency)’ 관계로 변질될 수 있으니 늘 주의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거나, 자신의 바운더리를 벗어나 독립적인 인생을 펼치려 할 때, 돌봄형인 사람들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면서 계속해서 공동 의존 관계에 머물 것을 종용합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건강한 관계도, 진실한 사랑도 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지배형은 흔히 알려진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의 특징을 상당 부분 드러냅니다. 이들은 겉보기에는 위풍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일 수 있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자아중심성이 강하고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들의 좌절된 애착 욕구는 외부 대상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향해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열등한 너희와는 달리 특별한 존재’라는 착각 속에서 살다 보니 관계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하면, 모든 것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기 일쑤입니다.  

또 인간관계를 상호 존중에 바탕을 둔 동등하고 수평적인 관계가 아니라, 권력과 힘의 원리가 작용하는 지배와 복종의 수직적 관계로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에게 지배당하거나 공격받지 않기 위해 ‘힘’을 추구하고, ‘강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깊은 무의식 속에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부적절감과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어, 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작은 비판이나 거절에도 취약한 모습을 보이기 쉽습니다. 

이처럼 상대방을 늘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양 행동하는 유형이라면 지배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 만약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권위적인 태도에 반발심을 느끼고 관계를 오랜 기간 이어 가지 않게 됩니다. 문제는, 바운더리가 희미한 분들입니다. 자아가 미분화돼서 바운더리가 희미한 분들의 경우, 지배형과의 수직적 혹은 착취적 관계에서 아예 문제 인식을 못 느끼거나, 불평등한 관계라는 사실을 인지해도 맞서서 대항하거나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러한 역기능적 관계의 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서 상대에 따라 돌봄형을 보일 수도, 지배형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르면서 주된 관계 유형이 변하기도 하며,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건강한 바운더리를 세워 갈 수 있으므로 무엇보다 자신의 주된 관계 양상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관계 속에서 여러분의 경계는 어떠신가요? 누군가 상습적으로 여러분의 바운더리를 침범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누군가 애써 세워 둔 경계선을 나도 모르게 드나들고 있지는 않나요? 혹시 바운더리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분이 계시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타인이 그어 놓은 경계선을 함부로 침입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나의 경계가 존중받아야 하듯, 타인의 경계 역시 존중받아야 마땅하겠지요. 건강한 바운더리와 적당한 거리 조절을 통해 관계의 어려움보다는 기쁨을 느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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