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시험 합격소감]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기분입니다"

 

 

도무지 맑아지지 않는 머리를 깨우려 커피를 사발째 들이켜 마셔서였을까요, 누워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푹신하고 쾌적한 호텔 침대였지만 시험 전 날 밤만은 잠이 잘 오질 않았습니다. 모 교수님께선 시험 전 날 누웠을 때 머릿속에 방대한 양의 공부했던 지식들이 흘러 다녔다던데, 그날 밤 제 머릿속에 흐르던 것이라곤 내일 아침 마실 커피와 내일 아침 시험에 대한 걱정뿐이더군요. 그렇게 두 번의 시험이 지나갔고 어느덧 다시 돌아온 일상생활이지만, 시험 전 날의 그날 밤을 떠올리면 아직도 그 긴장감이 쉽게 잊히질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마친 김재준입니다. 전공의 시작 후부터 늘 염원해왔던 전문의 시험에 합격한 것도 기쁜 일인데, 신경정신의학회보를 통해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올해 함께 시험을 준비했던 대구 경북 지역 동기 선생님들, 그리고 전국의 모든 동기 선생님들께도 위로와 축하 인사를 건넵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합격 소식을 들으니 지난 4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지나갔습니다. ‘우울증’이 뭐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슬픈 거요!’라 낭창하게 대답하던 픽스턴 기간의 제가 보입니다. 첫 환자 보고를 준비하던 주말, 처음으로 혼자 당직을 서던 밤, 정신 치료 슈퍼비전을 받으러 옆 병원까지 걸어 다니던 길이 보입니다. 세상의 모든 고난과 짐을 내가 짊어진 기분이었던 의국장 시절도 보이고, 포스터를 발표했던 후쿠오카에서의 한일학회, 설레던 파리에서의 ECNP, 그리고 서울과 부산, 광주에서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회의 밤들도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렀던 그날들에서 어느덧 지금의 제가 된 것이 믿기질 않네요. 그 여정을 함께해 준, 감사한 분들이 제겐 참 많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합니다.

 

교수님들께서는 제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삶과 배움의 자세를 가르쳐주셨습니다. 환자에 대한 관심뿐 아니라 연구에 대한 열정, 후배이자 제자인 전공의들에 대한 세심한 가르침과 배려, 애정이 없었다면 고된 4년 동안의 수련을 버티기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가르침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되겠습니다. 의국 선배들, 그리고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동문 선배님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역시나 식상한 표현이지만 제가 선배가 되어보니 선배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더 잘 느끼게 되더군요. 선배들에게 혼이라도 날 때면 못난 마음에 혼자 삐쳐서 서운해하던 제가 어찌나 작게 느껴지던지요. 사고뭉치 후배가 미울 법도 한데 늘 위해주고, 마지막까지 시험 잘 보라며 응원과 관심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와 준 의국 후배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팍팍하고 바쁜 의국 생활 중 조금 더 따뜻하게 웃어줄 수 있었는데, 여유가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해 늘 마음 한편으로 미안합니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이며, 열정이 넘치는 후배들을 보면서도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종종 다투기도 했지만 제게 늘 든든한 지원군이자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동기인 장서영 선생님에게도 늘 고맙습니다. 누나, 누나와 함께 수련을 받게 된 것은 내게 가장 큰 행운이었어. 항상 고마워.

 

저는 이제 막 출발점에 다시 선 기분입니다. 지난 수련 과정을 발판 삼아 앞으로도 부지런히 배우고 최선을 다하는 전문의가 되겠습니다. 가수도 아닌데 마치 가수들이 자신의 앨범에 적는 thanks to를 장황하게 적어낸 것만 같아 부끄럽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들과, 지난 4년 동안 저를 지나간 모든 환자분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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