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학교 상담 전문가로서 자해 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학교에서 상담전문가로 근무하고 있다.

이 곳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우울감을 경험하고 자해를 하고 심지어 마음속으로 자살시도도 한다.

아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쉽게 할 수 있다.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해 자해를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분노를 만들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 친구, 여자 친구, 선생님, 학원 선생님 등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결과가 향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많이 부딪혀 닳고 망가져 버린 자기 자신이었다.

 

 

매일 자해를 하는 아이에게 왜 자해를 하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아직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가리키며 '재밌잖아요' 라며 웃었다. 처음에는 그 아이의 그 눈빛이 섬뜩해 다음 회기에는 어떻게 상담을 해야 하나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 아이는 올 때마다 흉터가 하나씩 늘어나 있었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했다.

단순히 아이의 허세라고 보기엔 그 아이는 이미 자해에 중독된 듯 보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하는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학원을 다녀오면 늘 화가 나는데 그때마다 집에 와 자해를 했다고 했다. 그 아이는 나에게 자신이 자해하는 영상까지 보여주곤 했는데 이 영상을 가끔 SNS에 올리면서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곤 한다고 했다.

아이는 그렇게 3년간 자해를 했다. 꾸준한 상담으로 자해를 안 했다로 이야기가 끝났으면 좋겠지만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나이가 들고 성숙해지고 신경 쓸 게 많아 빈도가 줄었을 뿐, 완전히 자해를 멈추진 않았다. 그 애가 졸업할 때 나는 마데**을 선물로 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이거보단 후**이 더 좋아요' 하고 웃었다. 전보다 스트레스가 조금 줄었는지 한결 여유 있는 모습에 아이를 걱정 없이 졸업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결말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아이들은 어른들의 바람처럼 그렇게 평온한 인생을 살지 않는다.

 

어느 날 학교로 전화가 걸려왔다. 자신의 아이가 3학년에 진학 중인데 혹시 시간 될 때 아이를 불러다가 이야기를 좀 나눠보라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이의 상태를 물었지만 딱 보시면 알 테니 그냥 상담만 좀 부탁한다는 이야기였다.

즉시 담임선생님과 통화 후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왼손에 장갑을 끼고 있었다. 두꺼운 소재의 검정 색 면장갑. 이상함을 눈치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리고 아이는 긴장해하며 상담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상담을 시작하며 아이에게 왼손에 낀 장갑에 대해 물었다.

"손이 시려서요"

간결한 대답을 끝낸 아이가 자신은 아무 일도 없다며 얼른 교실로 가고 싶어 했다. 그럼 교실에 보내줄 테니 왼손에 낀 장갑을 한 번만 벗어보면 안 되겠냐고 솔직하게 물어봤다.

아이는 머뭇거리더니 장갑을 벗었다. 손톱은 닳고, 손가락 끝은 피가 방금 전에 굳은 듯 시커멓게 변해있었고 손가락 주름 사이사이에도 피가 나 손가락을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 아이를 여태 몰랐을까.

장갑을 벗은 아이가 대뜸 눈물을 흘렸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이에게 휴지를 주며 괜찮다는 말 한마디를 하자 아이는 더 크게 눈물을 흘렸다.

이 아이는 중학교 때 노는 친구에게 이 손을 밟힌 이후로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밤 집에서 손을 30여분이 넘게 씻곤 했다. 칫솔로 손톱 사이사이와 손톱 주름을 닦고 최근에는 그 정도가 심해져 손톱을 다듬는 도구로 손톱이 다 없어질 때까지 손을 씻는다고 했다.

 

 

나는 이 아이의 상태를 결벽과 강박 사이에서 고민하다 이 아이가 이 행위를 한 후 정체모를 시원함과 쾌감을 느낀다 하여 이것 또한 자해의 일종이라 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아이는 매일 밤 그렇게 손을 혹사시키며 과거의 초라하고 불쌍했던 자신을 위로해주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타 지역으로 오게 되어 자신을 아는 사람이 없지만 여전히 조금은 위축되고 우울한 모습에 담임선생님도 아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곤 했다.

아이는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상담을 받으러 왔다.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알아채고 자해 행동을 줄이고 이런 것이 아닌 지난날의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내는데 주로 상담 시간을 활용했다. 나도 그런 아이를 크게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대화만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자해행동을 멈춘 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고 또 자신의 손을 보면 모두가 기함을 하고 도망치거나 정신병자 취급을 했는데 나만 그런 그 아이를 그냥 평범한 내담자로 보았기 때문인 걸까. 상담을 시작하고 3개월 뒤에 아이가 손톱이 자랐다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아기 손톱처럼 작았지만 손톱이 자란 것 같다며 나에게 신나게 손을 내미는 그 모습을 보고 '헐 진짜네?' 하고 함께 반응해주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올라오는 그 날의 기억들이 아이를 화장실로 이끌었고 손톱이 자라는 시점에 다시 아이는 손을 건드렸다. 결국 아이를 설득해 어머니와 정신과에 방문하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는 정신분열증 초기 진단을 받았다. 환청과 망상. 아이는 자해를 할 때마다 늘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되는 모습을 보였단다. 집 안에 있을 때는 멍하게 가만히 있기도 하고 갑자기 오른손으로 얼굴을 벅벅 닦는 행동도 하는 듯 내가 모르는 아이의 상황이 어머니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진단을 받은 아이는 나와 상담을 하다 학교를 그만두고 말았다.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권유했다고 했나.

 

이 두 케이스가 내가 학교에서 만난 가장 심한 자해행동을 보인 아이들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하고 매일 퇴근 후 책을 찾아보고 청소년 자해 사례도 수 없이 찾아보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역량 부족이었던 건지 아이들은 잠시 멈출 뿐 완전한 자해로부터의 해방은 되지 못했다.

자해를 하는 아이들은 그 흉터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부끄럽다고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공통점은 마음속에 '외로움'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고, 자해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늘 불안해했고 뭔가에 쫓기듯 초조해하기도 했다. 아마 자해로 인해 상담을 받고 있는 이 상황 자체에서 도망치고 싶어 했던 걸까. 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마음을 빠르게 열었다. 아이들은 내게 흉터를 보여주며 '괴물 같죠?', '무섭죠?', '징그럽지 않아요?'라는 말을 꺼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면 좋겠어?'라고 물었고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쏟아지는 화수분 같았다.

이야기는 늘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장황하게 펼쳐진 17-19년의 역사를 몇 번의 상담회기에 다 담아낸다는 것조차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열심히 상담에 임했다. 아이들은 간혹 내 진심을 테스트하려 했지만 그 자체가 진심이었기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안심을 한 것 같기도 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해를 하는 것보다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에 자다가도 전화를 받고 주말에도 문자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의 SNS를 몰래 찾아 내 응원의 댓글을 달며 비밀 친구를 하기도 하였다.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뭐였을까.

나는 무엇을 더 했어야 하는 걸까. 자해를 하던 아이가 자해를 멈춘 사례는 딱 1건이었다. 그 이외의 모든 일은 마치 모래 위에 견고하게 지은 집처럼 수고스러웠지만 허무하게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난 지금처럼 노력할 것이다. 자해를 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괜찮다고 할 것이다. 그게 상처 입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어른으로써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 아닐까 싶으니까. 

 

 

 

* 정신의학신문에서 독자기고 칼럼을 게재합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정신의학신문 홈페이지 - 게시판 -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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