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심전심(以心傳心). 석가가 제자인 가섭에게 말이나 글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으로 불교의 진수를 전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로,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잘 통한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고사성어입니다. 

이 고사성어의 뜻처럼 만약 주변 사람들과 항상 이심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듯합니다. 물론 이는 무척이나 이상적인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아는 것을 상대도 알고 있다고, 나의 마음을 상대도 충분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와 가까운 이들이 평소 하는 행동이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속단하기도 하죠.

흔히 부부간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만큼은 내 마음을 알아줘야지.”라거나 오래된 친구나 자녀처럼 가까운 사람에게 “속일 사람을 속여라. 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거든.” 하고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가 하는 행동 하나, 눈짓 하나에도 상대방이 나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다거나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게 당연하다고도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들의 생각이나 마음을 잘 읽고 있다는 착각의 늪에 빠지기도 하죠.

그러나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속담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법입니다. 

 

남편이 기나긴 해외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먼 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귀국한 남편은 집에 도착하자 긴장감이 풀렸는지 피로감이 물밀듯이 몰려왔습니다. 남편의 출장으로 인해 오랫동안 아이들을 혼자서 돌봐야 했던 아내도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였죠. 마침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온 다음 날은 주말이었고, 아내는 남편에게 가까운 곳이라도 좋으니 나들이를 다녀오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직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자신에게 외출하자고 하는 아내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자신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고도 생각되어 서운함마저 느꼈죠. 속상하기는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남편이 회사 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이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으니까요. 아내는 그런 자신의 노고는 알아주지도 않고 혼자서만 쉬고 싶어 하는 남편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내는 남편이 단 하루만, 아니 반나절만이라도 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반대로 남편은 아내가 오랜만에 만난 자신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그 마음을 알아봐 주지 못했던 겁니다. 또 자신이 일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묵묵히 가정을 지키며 아이들을 보살펴 주었던 아내 덕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지요. 

아내도, 남편도 서로의 속마음은 이야기하지 않은 채 상대가 알아주기만을 바랐고, 또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여겼던 겁니다. 이렇게 상대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할 때 우리는 마음 읽기 함정에 빠지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이 마음 읽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로 잘 소통할 수 있을까요? 핵심은 바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명확히 인지하고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의 생각과 감정은 어떠한지 묻고, 상대가 답한 내용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합니다.

한동안 ‘답정너’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준말인데요, ‘답정너’의 태도를 자주 취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에게 질문하기는 하지만 형식적인 질문에 그치기 쉽습니다. 이런 분들은 정말로 상대의 생각이 궁금하거나 의견을 존중해 주기 위해서 묻는다기보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자 하는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진솔한 대화와 소통을 해 나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인 장 피아제(Jean Piaget)는 어린이의 정신 발달, 그중에서도 특히 논리적 사고 발달에 관한 많은 임상적 연구를 시행했는데요, 그의 ‘세 산 모형실험’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보이는 유아들의 사고 특성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피아제는 탁자 위에 모양과 꼭대기의 형태가 각각 다른 산 모형을 세 개 올려놓습니다. 이후 아이에게 각 측면에서 산을 바라보게 한 다음, 아이와 인형을 서로 맞은편에 앉힙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맞은편에 앉은 인형은 어떤 산 모양이 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데요, 성인이라면 당연히 인형 쪽에서 보이는 산 모양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때 자기 자리에서 보이는 산 모양을 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서 전조작기에 해당하는 유아들은 이처럼 아직 사물이나 사건, 상황 등 여러 면에서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탈중심화 능력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에 비록 인형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와 똑같은 산 모양을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중심적 사고는 연령이 증가하고 사고가 발달되어 조망 수용 능력이 생기면서 차차 벗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내 생각이 곧 너와 같은 생각’, ‘내 마음이 곧 네 마음’과 같이 ‘마음 읽기 함정’에 자주 빠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자기중심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앞선 사례에서 남편과 아내는 마음 읽기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 상황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었을까요? 먼저 아내는 그동안 남편 없이 혼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많이 힘들고 외로웠다고 솔직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남편도 그간 편안하게만 있다 온 것은 아니니 남편 역시 수고가 많았음을 알아주는 인정의 말을 함께 표현해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남편 역시 아내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이 더 잘 상기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 주말이니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을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남편의 의사를 물어봤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어떻게 말해 줬더라면 좋았을까요? 남편은 먼저 자신이 집을 비운 동안 대신해서 아이들을 전담해 준 아내에게 고생이 많았다고 아내의 수고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후에 아직 시차 적응이 좀 덜 되었으니 오늘은 집에서 오붓하게 보내고 내일 나들이 가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아내의 의견을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혹은 낮에는 좀 쉬고, 저녁에 아내가 좋아하는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것은 어떨지 제안해 볼 수도 있고요.

 

여러분께서도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한때 ‘초코파이’ 광고의 CM송으로 유명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이 노래 가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빛만 보아도 알아. 그냥 바라보면, 마음속에 있다는 걸.” 

물론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혹은 친밀한 사람들 간에 서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다만, 이 마법 같은 순간이 우리 인생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마법 같은 순간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본 채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지레짐작하지 않고 질문을 해 나간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누군가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 마법 같은 순간이 더 많이 펼쳐지기를 바라겠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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