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 

정신의학신문 | 김인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20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우리 삶의 일부가 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지난 1월 말경 드디어 해제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얼굴을 가린 채 서로를 온전하게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은 드디어 자유롭게 숨 쉬고,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반가운 마음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제 너무 익숙해진 마스크를 벗는 것이 어색하다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마스크를 계속 쓸 것이라는 의견들도 꽤 많았습니다. 실제로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권고로 바뀐 후에도 많은 사람이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된 해외 국가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마스크 착용이 권고 사항이 되면 당연히 사람들이 마스크를 많이 쓰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후에도 대부분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모습에 외신에서는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는 양상이 나타나는 이유로 메르스, 사스와 같은 전염병을 겪은 후 코로나가 또다시 발생하면서 마스크 착용이 습관화된 점과 함께 타인에 대한 배려, 미세먼지 예방 효과를 꼽았습니다. 

이와 함께 문화연구자인 김성민 씨는 마스크로 인해 외모 관리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 점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코로나 동안 화장품이나 의류 판매량이 상당히 감소했고, 외출 시 당연히 화장하거나 꾸며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편하다는 사람들의 의견도 많았습니다. 또, 직장을 비롯한 사회적 상황에서 표정 관리를 할 필요가 없어져 마스크의 순기능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습니다.

이처럼 성인들에게는 마스크가 외모나 정서 관리에 대한 사회적 압박으로부터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며 편안함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정서적, 신체적 발달과정에 있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학습하는 시기에 있는 아동,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마스크가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직접적인 교류의 감소와 함께 마스크로 인해 정서 인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입을 비롯한 얼굴의 전체적 표정과 윤곽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 년 주기로 반 편성이 바뀌는 유치원, 초중고교생들은 한 해가 다 가도록 교실에서 친구들의 온전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새로운 친구들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된 후 처음 보는 친구들의 온전한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마스크를 벗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한 초등학생은 뉴스 인터뷰에서 마스크를 벗고 친구들의 얼굴을 보게 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좋은 부끄러움”이라고 시적인 답을 해서 주목받기도 했습니다. 마스크를 벗는 것이 쑥스럽기는 하지만, 친구들의 얼굴을 볼 수 있으니 ‘좋은 부끄러움’이라는 것이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스크는 어느새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스크 벗는 것을 마치 ‘옷을 안 입은 것처럼’ 부끄럽게 느끼기도 합니다. 마스크 안에 얼굴을 감추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내지 않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고 감정을 나누기보다는 익명의 존재로, 중립적인 상태를 유지하며 적당한 거리를 갖는 것이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현상을 꼭 ‘좋다/나쁘다’의 이분법적 관점에서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항상 웃는 얼굴로, 일정 수준의 외모나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며 살아야 한다는 압박으로 피로감을 느꼈고, 마스크로 인해 뜻밖의 숨 쉴 공간을 찾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마스크가 물리적으로는 답답함과 호흡하기 어려운 느낌을 주었을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오히려 안전감과 편안함을 가져다준 것이지요. 그와 동시에 마스크로 인해 독특하고 고유한 얼굴을 지닌 존재로서의 개별성, 고유성의 상실과 사회적, 정서적 교류의 부족이라는 부작용 역시 함께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와 마스크는 우리에게 많은 질문과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염병 규제를 위한 통제와 자유 사이에서 가치관의 충돌, 방역 대책 및 마스크 착용을 둘러싼 각국 시민들의 반응을 통해 인권과 자유, 타인에 대한 배려, 집단주의적 문화와 개인주의적 문화 등 철학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와 규범에 대한 고민과 논의가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이 갈등과 투쟁이라는 양상으로 발현되기도 했습니다. 

마스크 착용이 자율화되며 각자 고민이 많으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마스크를 쓰느라 갑갑했기에 이제 벗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서 망설이시는 분도 있을 테고, 나와 타인의 건강을 위해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그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자신의 선택에 자신감을 갖고, 타인의 선택 역시 존중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바라봅니다. 

마스크 안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마스크로 인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사이에서의 적절한 조율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듯, 이 시간이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수용하는 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당신의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김인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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