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라는 늪에 빠진 분들에게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초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공부면 공부, 노래면 노래, 운동과 미술까지 그야말로 다재다능했습니다. 멋진 외모에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에게 인기 있는 것은 물론 선생님들의 관심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친구는 늘 ‘자신이 부족하다.’, ‘더 잘해야 한다.’며 스스로가 한참이나 모자란 것처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생뚱맞게 항상 붙어 다니던 저를 치켜세우곤 했지요. 저는 묵묵히 할 일을 하는 평범한 아이였지만, 그 친구처럼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재능 있는 아이는 아니었던 터라 그 친구가 왜 자꾸만 자신은 낮추면서 저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은 치켜세우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린 마음에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뛰어난 그 친구를 지켜보며 어떻게 겸손까지 겸비할 수 있느냐며 감탄하곤 했습니다. 신이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을 만들었다면 아마도 제 친구와 같은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 만큼 부러운 구석이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그 친구는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부모님의 인사 발령과 맞물려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찾아 이사했고, 입시를 치른 후에 서울 소재의 한 명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첫 여름방학, 여행을 떠난다며 돌아오면 연락하겠다던 친구의 소식을 마지막으로 아쉽게도 연락이 끊겼지만 이따금씩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지곤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저는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조각난 퍼즐을 열심히 끼워 맞춰 보았습니다. 저는 친구가 자신을 낮추어 말할 때마다 늘 친구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친구는 그런 저의 말을 위안 삼아 자신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마음의 안정감을 되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완벽주의란,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완벽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신념과도 같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지금보다 좀 더 노력해서 보다 나은 성취, 좋은 결과를 얻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고 건강한 동기로 작용해 실제로 성장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이고, 그 결과에 만족하면서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과 달리,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만족할 줄 모르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혹은 타인을 향해서 채찍질을 가합니다. 이러한 완벽주의는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피곤하게 할뿐더러 인생의 만족감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완벽주의 성향은 사람에 따라 우리의 일상에서 몇 가지 유형으로 발현됩니다. 첫 번째는 ‘회피형 완벽주의자’입니다. 이들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까 봐 아예 시작하는 것조차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룹니다. 주변에서는 종종 ‘게으른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지만, 이들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불안함에 압도되어 모든 시작과 선택을 망설입니다. 뒤늦게 무언가를 하려고 시도하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족한 확신으로 시도 자체를 회피합니다. 그러나 막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기도 하죠.

두 번째는 ‘감독형 완벽주의자’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실현 불가능한 목표는 없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높은 기준을 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인들이 감독형 완벽주의자의 가족이나 친구, 연인처럼 중요하고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서 문제와 갈등이 생겨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한다는 데 있죠. 때문에 스스로 병원을 찾는 경우는 별로 없고, 이들로 인해 힘들어진 주변 사람들이 견디다 못해 병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는 ‘자책형 완벽주의자’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기준보다 세상이나 타인의 기준을 중요시하며 어떤 일의 과정보다 결과나 성과에 집착합니다. 항상 타인의 기준에 신경 쓰며 만족시키기 위해 전전긍긍하다 보니 불안감과 긴장 수준이 높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커서 자책과 우울감으로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지고, 다른 이들의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완벽주의라고 해서 모두 다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인다거나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걸까요? 완벽주의와 관련해 주로 부정적인 측면만을 연구하던 1990년대 이전과 달리 그 이후로는 긍정성도 함께 연구되면서 완벽주의를 ‘순기능적 완벽주의’와 ‘역기능적 완벽주의’로 구별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했습니다. 순기능적 완벽주의자들은 완벽주의의 긍정적인 면을 잘 활용할 뿐만 아니라, 실수나 실패, 부정적인 평가를 크게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성장을 위한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완벽주의자들을 일컬어 ‘안정형 완벽주의자’라고도 하는데요, 이들의 이런 성향도 반드시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기능적 완벽주의자들도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객관적으로 살펴본 뒤에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면 얼마든지 ‘안정형 완벽주의자’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라는 책에서 역기능적 완벽주의를 극복하고 안정형 완벽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이를 독자분들에게 소개합니다. 역기능적 완벽주의 성향으로 고민하시는 분들이라면 이 방법을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인정하기: 비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분이라면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높은 분일 수 있습니다. 스스로 완벽주의자임을 인정함으로써 완벽주의적 경향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완벽주의적 성향을 없애지 않고도, 인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건강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이란 어떤 것인지, 생활 속에서 완벽주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기록해 보세요.

 

2. 기준 바꾸기자신이 완벽주의자임을 인정한 뒤에는 평소 습관처럼 적용했던 비현실적인 기준을 현실적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사에 엄격한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해 스스로를 과도하게 압박하며 살아왔다면, 삶의 전반적인 영역을 세부적으로 나눠서 지금껏 적용했던 기준에 대해 적어 봅니다. 예를 들면, 학업이나 업무, 외모, 경제력 수준, 대인관계, 성공이나 건강, 행복과 같은 분야별로 나눠 지금까지의 비현실적 기준과 현실을 고려한 새로운 기준을 각각 기록해 보면 됩니다.

 

3. 두려움의 뿌리 찾기: 완벽주의자들은 감정까지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억압하거나 외면해 버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은 대부분 부정적인 생각이나 생각의 오류로 인해 더욱 극대화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주로 생각의 오류를 범하는 측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숙고해 보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기분과 생각이 떠올랐는지, 어떤 자동적 사고가 작동했는지 등을 살펴봄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수용하고, 비현실적 사고를 적응적이고 현실적 사고로 대체해 나가도록 합니다.  

 

4. 실수에 대한 두려움 버리기: 완벽주의자들은 실수나 실패를 과도하게 두려워하며 시작조차 주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실수나 실패는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언제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결코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실수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그것이 원하는 것을 이루거나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요하고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실패의 재해석’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5. 완벽이 아닌 완성을 향하여:‘완벽하다’는 것은 그 기준이 뚜렷하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무슨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그만 멈추십시오. 완벽이 아닌, 완성을 목표로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때 건강한 완벽주의자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

§참고문헌: 윤닥(2022). 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한빛비즈.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