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공감 없는 남편이 원망스럽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남편에 대한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글을 남깁니다. 남편은 가난하게 자랐고, 완벽주의자인 아버지 밑에서 칭찬을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어머니와 누나와는 좋은 관계입니다.

저는 늘 철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를 잘 못 챙겨 주는 부모님께 불만이 많았고, 외로웠습니다. 부정적이고, 남 탓도 많이 하는 성격입니다. 결혼 전 부모를 원망했고, 결혼 후 남편을 원망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거의 연애 기간 없이 상황상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일 년간 시댁에 있으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남편도 저를 챙겨 주는 모습은 없었고, 그냥 외롭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분가 후 남편의 태도와 시댁에 대한 불만을 말하고 화를 내면, 남편은 전혀 공감하는 태도 없이 같이 화만 냈고, 그 문제로 싸운 기간이 4~5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서로 바쁘게 살아서 말은 안했지만, 제 마음 한 켠에는 남편이 저를 이해해 줄 마음이 없다고 여기게 되면서 마음의 문도 닫혔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자기 가족이 먼저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으로 남편을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

최근에 남편의 오해할 만한 행동과 거짓말로 인해 저는 또 한 번의 상처를 받았고, 지난 15년간 마음속에 쌓아 왔던 것들과 이번 일이 폭발해서 욕까지 하며 싸웠습니다. 남편은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제게 사과는 했지만, 제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실망, 분노, 오랜 시간 쌓인 원망이 쉽게 없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용서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지금 5개월째 분노를 안에 품고 있어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제는 남편도 인정하고 깨닫고 노력하는데… 제가 아직 마음을 열 준비가 안 된 건지… 계속 남편만 보면 화가 납니다. 이혼 얘기도 제가 합니다.

지금 제가 일을 쉬고 있어서 마음 편히 지내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저를 지배하니 답답하고 괴롭습니다. 짧게라도 답장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답답한 마음에 올려주신 사연글을 찬찬히 잘 읽어 보았습니다. 지난 15년간의 결혼생활 동안 남편분이나 시댁과의 관계에서 누적된 불만과 실망감, 섭섭함과 외로움 등이 제때에 적절히 해소되지 않아 마음이 많이 지쳐 계신 듯합니다.

어찌 안 그렇겠습니까… 나를 가장 이해해 주고 보듬어 주었으면 하는 내 편이 나의 마음은 잘 몰라주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상대에 대한 원망과 서운함이 쌓여 갈 수밖에요. 부부 관계란 것은, 다른 그 어떤 관계보다도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상호적이면서도 폐쇄적이라는 특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 할지라도 매일 마주 보고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 또 함께 풀어 가고 해결해야 할 일들도 산적해지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의견이 달라 다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오랜 시간 함께하면서 건강한 소통을 통해 갈등이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서로를 격려하거나 인정해 주며 애정을 표현하면서 관계를 공고히 다져 나가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오해와 갈등이 빈번해지면서 반목이 계속될 경우 부부는 출구 없는 미로에 갇힌 답답함을 호소하게 됩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신혼 초기 시댁에서 생활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남편분이 사연자님께 힘이 되어 주기를, 힘든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건만, 남편분께 원했던 위로와 공감을 거의 얻지 못한 데 대한 깊은 좌절감과 울분이 남편분과의 건강한 소통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내 편이 되어 줄 거라고 굳게 믿었던 남편이 나보다는 시댁의 편에 선 것 같아 보일 때 그 서운함과 좌절감은 정말 크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릴 적부터 친정 부모님께 불만이 많았고, 외로움도 많이 타셨다는 사연자님의 글로 미루어 볼 때, 부모님과의 애착에 있어서도 안정감을 느끼기보다 결핍감이나 소외감을 많이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사연자님께서는 결혼과 동시에 이러한 자신의 애정 욕구와 심리적 안정감을 남편에게서 채우고 싶은 간절한 무의식적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좌절되자 그로 인한 무력감과 원망감이 더 크게 남편을 향하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신혼 초기에는 많은 부부들이 서로 살아온 배경이나 가치관, 생각의 차이 등으로 인해 가장 갈등이 잦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또 그만큼 상대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본인 또한 결혼 생활에 대한 경험치가 없다 보니 미숙한 시기이기도 하고요. 물론 남편분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이 크시겠지만 남편분 역시 그러한 상황에서는 원가족과 사연자님의 사이에서 나름 고민되고 어려운 점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어쨌든 지금껏 이러한 서로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거나 마음을 공감받고 어려움을 알아주는 감정적 교류와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바쁜 생활 속에 묻혀 지금까지 흘러오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남편분께서 사연자님의 이러한 간절한 바람과 욕구를 알아채고 좀 더 세심하게 사연자님을 보듬어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과거는 흘러간 시간입니다. 다행히도 남편분께서는 아직 가정을 유지하고 싶어 하시고, 또 과거의 미숙한 부분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며 노력하려고 하시는 모습 등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사연자님께서도 그간 닫아 두었던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보신다면 진정한 소통을 위한 길이 열리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사연자님께서 그동안 남편분에 대한 실망과 원망하는 마음이 깊어 여전히 많이 힘드신 것은 너무나도 이해가 갑니다. 

 

비록 그렇더라도 만약 정말로 남편분과 이혼 생각이 없으시다면, 홧김에라도 이혼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진심이 아닌 사유로 이혼 이야기가 오간다면 관계를 개선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진짜 속마음과는 다른 표현 형태 혹은 정반대의 잘못된 표현으로 인해 부부간에 소통의 어려움이 생기고 오해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사연자님께서 진짜로 원하는 것은, 그간의 서운함과 심적 고통을 남편분께서 알아주고 진심으로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겁니다. 따라서 사연자님의 진짜 속마음과 바람을 외면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상대에게 원하는 바를 표현하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오랫동안 지속해 온 부부간의 미숙한 의사소통 방식을 이제부터라도 건강하고 성숙한 소통 방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부부가 함께 기울이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 각자가 자신과 상대의 부정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점검하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교정해 나가려는 의지와 인내심이 요구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행복한 부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로 협력하려는 마음을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남편분에 대한 원망감과 미워하는 감정이 아직 남아 있어도 괜찮습니다. 용서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 사연자님의 마음속에 있는 남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단 있는 그대로 수용해 보세요. 

다만,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한다고 해서 남편분과 현재에도 반드시 불화를 일으킨다거나 갈등 관계로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이어 간다면, 지금의 안 좋은 감정은 차차 옅어지고 좋은 감정은 점점 상승되는 국면의 전환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 통장이란 것이 존재합니다. 서로 간에 긍정적인 상호작용과 감정이 쌓일수록 긍정 감정 통장에 잔고가 쌓이고, 부정적인 상호작용과 감정이 쌓일수록 얼마 남지 않은 긍정 감정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고, 계속 마이너스 상황이 누적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러니 부정적인 감정의 마이너스 통장을 다시 긍정적인 감정의 잔고가 쌓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부간에 소통이 잘되야 하고,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대화할 때 지켜야 할 태도와 피해야 할 태도를 기억하시고, 일상에서 부부가 실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지켜야 할 대화법과 피해야 할 대화법에 대해 말씀 드리고자 하니, 참고하시어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누구든 먼저 부부간에 대화를 요청하는 시도가 있다면, 피하지 말고 진지하게 응해 주어야 합니다. 대화에 응하지 않는 것은 소통을 거부하거나 대화를 시도한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갈등이 있을 때는 더욱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부드럽게 시작해야 합니다. 언성을 높이거나 상대에 대한 비난으로 시작해서는 대화가 잘될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분명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자신의 생각과 감정, 욕구를 명확히 인지해 보는 자기 성찰 시간을 많이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거니 혹은 모호하거나 뭉뚱그려서 표현하는 것은 서로 간에 오해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니 명확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욕구와 필요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 못지않게 이때 드는 나의 솔직한 감정과 느낌도 전달해서 감정적 교류나 소통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서로의 생각을 표현하고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감정적인 소통이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 긍정적인 상호작용이나 애정적 표현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어색한 상태라면 특별한 것을 함께하지 않고 별다른 주제의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그저 한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듣거나 차 한잔 기울이면서 함께 편안한 시간을 많이 가져 보실 것을 추천 드립니다. 그렇게 서로가 한 공간에서 이완된 상태로 편안하게 있어 보는 경험을 시작으로 함께 가까운 공원에 산책도 나가시고, 근교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도 다녀오시는 등 가벼운 데이트 시간을 조금씩 늘려 가시기는 것이죠.

그리고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는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해 주는 태도를 보여 주세요. 공감적 경청은 사연자님께서 남편분께 가장 바랐던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남편분께서 앞으로 변화하려는 의지가 있으신 만큼 공감과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반대로 배우자와 대화할 때 상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리지 말고 자신의 욕구와 바람을 위주로 표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 배우자가 나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한다면 상대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는 불필요한 자기변명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앞에서 말씀 드린 부부간에 지켜야 할 대화법에 대해서 사연자님께서는 물론, 남편분께도 함께 읽어 보시고 앞으로 어떻게 소통해 나가면 좋을지 의견을 나눠 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당장 며칠 안에 혹은 몇 주 안에 남편에 대한 미움과 서운함과 같이 케케묵은 감정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보다는 길게 내다보시고 남편분과의 관계를 재건해 나간다는 마음가짐을 가지신다면 어떨까요.

세월이 흘러 약해지고 뒤틀린 나무 집을 튼튼한 새 목재로 하나씩 보수하고 재건해 나가는 것처럼, 그동안 사용했던 부정적인 소통 방식은 점차 줄여 나가고 긍정적인 소통 방식을 늘려 나간다면, 어느새 그토록 사연자님께서 바라던 나만의 튼튼하고 따뜻한 울타리를 만들어 가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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