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우울의 늪에서 네 발짝 빠져나오기 ④ - 사람들과 연결되기

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한 기분이 지속되면서 기분이 계속해서 가라앉을 때 우리는 평소 잘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거나 때로 연락하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집니다. 우울감이 심해질 경우, 무기력감은 증가하고 활동성은 줄어들며, 일상생활이나 학업적인 면, 직업적 수행 능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대인관계 측면에서도 위축되거나 철수하려는 경향성을 보이면서 외로움과 고립감이 강화되기도 하죠.

이처럼 우울증은 평소 대인관계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없던 사람도 외롭게 만들 수 있는 질환입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예전처럼 즐거움이나 여타의 긍정적인 감정보다 소외감이나 부정적 감정을 더 많이 느끼게 되면서 점점 사회적 활동이나 개인적인 만남까지 줄이게 되지요.

그러나 인간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생존에 유리하도록 진화해 온 사회적 동물인 만큼 다른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정서적 안정감을 유지하고 행복감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러한 연결이 끊어지고 혼자서 고립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우리 뇌에서 위험한 상황으로 지각돼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인관계나 친밀한 감정 등과 관련된 신경호르몬 중 흔히 ‘사랑의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은 우리가 사랑의 감정을 느끼거나 깊은 신뢰감을 느낄 때 분비되는 호르몬입니다. 이 옥시토신 호르몬은 우리의 스트레스와 통증 등을 낮춰 주는 역할도 하죠. 안타깝게도 우울증 상태에서는 이 옥시토신계의 분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는데요, 옥시토신이 분비되어야 할 때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되지 않아야 할 때 분비되는 식으로 비통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울증과 유대 관계, 옥시토신 호르몬과 관련한 한 흥미로운 연구에서는 생쥐에 사소한 부상을 입힌 후에 A 그룹은 혼자서 있게 했고, B 그룹은 두 마리씩 짝을 지어 지내게 했습니다. 얼마 뒤 생쥐들의 상태를 분석한 결과, A 그룹 생쥐들은 B 그룹 생쥐들에 비해 우울증 증상이 더 많이 나타나고, 어려운 과제를 쉽게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구진들은 짝을 지어 지내던 B 그룹이 부상에서 더 빨리 회복되고, 우울 증상을 덜 보였던 항우울 효과가 나타난 것이 옥시토신의 증가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냈죠. 

비록 이 연구의 실험 대상이 사람이 아닌 동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에게도 똑같은 결론을 도출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울증과 옥시토신 호르몬, 다른 개체와의 연결감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 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규명된 셈이죠.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들도 많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얼음물이 담긴 통에 손을 담그도록 요청했습니다. 이때 어떤 참가자들은 혼자 있도록 했고, 또 어떤 참가자들은 친구 혹은 모르는 이들과 함께 있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 혼자 있던 참가자들은 고통의 강도를 훨씬 더 크게 느꼈고, 친구와 함께 있었던 참가자들은 통증을 훨씬 적게 느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경우에도 통증이 경감되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뇌는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 등 친밀한 사람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애완동물 등과 접촉 혹은 소통할 때조차 뇌에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이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별다른 사회적 교류나 활동이 없이 그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나 우울 증상은 줄고, 안정감과 행복감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도 찾아볼 수 있죠.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낯선 사람과 대면하거나 많은 사람들 속에 있을 때 유독 불안감이 심해지는 분들도 있고, 평소 긴장 수준이 높아 오랜 시간 대화하는 것이 힘든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을 겪으며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큰 불편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있으실 테고요. 

이런 분들은 자신을 응원해 주는 친구나 가족들을 위주로 만남을 이어 가되,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이나 횟수를 본인에게 맞는 수준으로 적절히 조절해 나가신다면 우울감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대면 만남이 아직 많이 부담되거나 어려운 상황이라면, 전화 통화로 듣고 싶었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만약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거나 평소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전문 치료사를 만나 보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 힘이 되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연대감을 느끼거나 위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고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듯, 깊은 외로움과 고독감에 허우적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느 CCM 노래의 한 가사 구절처럼 여러분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내신다면 좋겠습니다. 지금 잠시, 그 사실을, 그 방법을 잊으신 것뿐이니까요.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전형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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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2. Norman, G. J., Karelina, K., et al (2010). Social interaction prevents development of depressive-like behavior post nerve injury in mice: A potential role for oxytocin.

3. Brown, J. L., Sheffield, D., et al. (2003). Social support and experimental p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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