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성인 자녀의 지각하는 습관, 치료받아야 할까요?

정신의학신문 | 이슬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현재 직장인이 된 25세 아들을 가진 엄마입니다. 보통은 아들이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제 품에 끼고 사는 것인지, 엄마인 전 아직도 아들의 출근 문제로 이렇게 글을 올리고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사연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독립을 시킨 아들 스스로 잘하겠거니 했는데, 어느 날부터 한 달 중 마지막 5일 정도는 새벽 6시에 전화로 깨워 줬음 하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알고 보니 자율 출근제인데, 처음엔 10시가 넘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늦게 출근을 하고… 이젠 12시에 출근을 하더라고요.

아무리 자율제라도 같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니 너무 늦게 출근하는 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상사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제가 평소에도 전화로 30분마다 깨워 주는데, 문제는 깨워 줘도 알았다고만 하고 출근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5일 정도는 깨워 주면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일찍 출근을 힙니다.

아들은 막상 출근하면 알겠는데 출근하기 전에는 깨워 줘도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별 중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뭐 어떻게 하느냐고만 말하니… 다 큰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다 보니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네요.

상담치료가 가능한 부분일까요? 상담하면 이런 부분도 나아질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성인 자녀분의 지각 문제로 고민이 되어 글을 올려 주셨네요. 아드님께서 회사에 지각하는 문제로 사연자님께 깨워 달라고 부탁을 했으니 아무리 성인이 된 자녀라 할지라도 단호하게 그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직장 생활에서 지각이나 근태와 관련된 문제는 기본적인 태도로서 평가되는 부분이기도 하므로, 당연히 잦은 지각은 좋지 않은 평가로 직결되기도 합니다. 고민글을 통해 아드님께서 직장생활을 잘 해 나가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과 걱정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이란 것은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분께서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퇴근 관리 역시 직장 생활의 일부분이므로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일 테고요.

지금 당장 자녀분께 전화해서 깨워 주는 것이 자녀분을 돕는 것처럼 여겨지실 테고, 또 그 부탁을 거절했을 때 자녀분이 사연자님께 서운함을 느끼지는 않을지, 행여 잦은 지각이 반복돼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지 여러모로 생각이 복잡하실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분이 헤쳐 나가야 할 어려움 등이 눈에 밟혀서 지금처럼 아침마다 전화로 깨워 주는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면 차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자녀분은 점점 더 스스로 아침에 눈뜨는 것이 어려워지지는 않을까요?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도 부모님과 같은 가까운 대상에게 부탁하거나 의지하는 습관이 굳어지지는 않을까요? 

 

혹시 아드님의 학창 시절, 학교에 다닐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 왔는지 궁금해집니다. 독립하기 전까지 사연자님께서 매번 아침마다 자녀분의 기상을 책임져 왔다면 스스로 일어나기보다 누군가가 깨워 주는 것이 안 좋은 습관으로 굳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자녀분께서 이번 출근 문제나 기상과 관련된 일 이외에 지금껏 성장하면서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잘 하는 편이었고, 주도적으로 처리해 오던 분이시라면 이번 일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좋지 않은 습관은 노력을 통해 충분히 바른 습관으로 바꾸면 될 테니 말입니다.

또는 예전에는 아침에 늦지 않도록 잘 일어났는데 요즘 들어 이런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이라면, 자녀분께서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워진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최근 자녀분의 체력이 부쩍 많이 떨어졌다거나, 밤늦게 잠드는 습관이 생겼다거나 또 다른 수면 문제가 있는지 등등 원인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해결책을 실행해 나가는 식이 되겠죠.

물론, 자녀분께서 스스로 늦지 않고 기상해서 지각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전제하에, 또 사연자님께서도 더 이상 자녀분의 기상 문제에 관여하거나 돕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가 선행될 때 이러한 시도와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녀분께서 원래도 다른 사람에 대한 의존적인 성향이 강하다거나 스스로 해결하거나 완료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완수하거나 제때 처리하는 데 문제가 있어 왔고, 자기 일에 대한 책임감이 낮은 편이라면, 지각하는 문제 역시 이러한 문제들의 연장선상에서 놓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혹시 자녀분께서 처음 걸음마를 떼던 장면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배울 때 넘어지기도 하고, 엉덩방아도 찧으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갑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스스로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해하며 더 열심히 걸음마를 합니다. 

이때 부모님께서 불안한 마음에 자꾸만 손을 잡아 주거나, 넘어졌을 때 아이보다 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아이는 더 겁을 먹고 발걸음을 떼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아이가 넘어진다고 손을 잡아 주는 것이 오히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죠. 

이후의 학습이나 여타 활동에서의 성취,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경험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 아픔을 겪으면서도 스스로 경험해 내는 것이 내면을 성장시키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됩니다. 

그러니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분을 믿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감당하도록 지켜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자녀분이 사연자님께 도움을 요청해서 해 오던 일을 이제는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 매몰차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엔 자녀분께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녀분과 잘 이야기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 만큼 나쁜 습관(지각하는 습관)을 고쳐서 스스로를 잘 관리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이죠. 

당장 모닝콜을 관두는 것이 서로가 힘들다면, 1, 2주 정도 유예 기간을 가지고, 그 기간 동안 알람 시계 등을 활용해서 제시간에 일어나는 습관을 들이는 노력을 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자녀분의 기상 습관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 밖에 일상생활이나 회사 생활에서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혹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 보시고, 필요하다면 상담을 통해서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특히, 학창 시절부터 아침에 혼자서 일어나는 게 힘들었다거나 지각 문제가 만성화되었다면 상담을 통해 이 부분을 다루어 보거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짚어 나가 볼 수도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는 자녀분 앞에 놓인 돌부리를 직접 치워 주는 것이 아니라 곁에서 든든한 지지자로서 자녀분을 믿고 응원해 주는 역할로 전환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인이 된 자녀라도, 자녀분께 정말로 큰 고민이 있다거나, 중대사를 앞두고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 조언을 요청해 온다면, 인생 선배로서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 주거나 그저 묵묵히 들어 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발 물러서서 자녀분을 믿고 응원해 준다면, 조금 더디더라도 자녀분도 스스로를 신뢰하며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실 거라고 믿습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슬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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