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닌 마음이 아프다는 신호, 신체화 증상 

정신의학신문 | 이성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새 학기가 시작되면 부모님들은 우리 자녀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해서 학교생활을 잘 해 나가기를 마음속으로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등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바쁜 아침 시간이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면서 통증을 호소하는 자녀들 때문에 덩달아 골머리가 아파지는 부모님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이럴 때 우리 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으실 것 같습니다.

간혹 정말로 학교에 가는 것이 싫어서 꾀병을 부리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등교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 같은 심리적 문제가 두통이나 복통, 어지럼증 등의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으므로, 자녀에게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시는 것이 좋습니다. 

신체화를 경험하는 분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럼증, 소화 불량,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구토, 각종 신체 부위의 통증, 무감각, 근육 마비, 목 넘김이 어려움 등등 다양합니다.만약 뚜렷한 내과적 원인이 없는데도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면 신체화 증상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감이 수년간 지속될 경우 ‘신체화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주요 증상으로는 수년에 걸친 신체 증상의 호소와 더불어 자신의 건강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입니다. 

미국의학협회의 보고에 따르면, 병원을 찾는 80% 이상의 환자가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으로 인해 신체적인 고통까지 경험하며, 남성보다는 여성에게서 5~20배 정도 많이 나타나고, 여성 100명 중 1, 2명이 이 질환을 호소할 만큼 흔한 마음의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년 여성이나 노인들이 주로 이 문제를 호소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건강이나 증상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과도하게 걱정하다 보니 이 부분에 시간과 에너지를 상당 부분 소모하면서 일상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방해를 받게 됩니다. 또 의료 기관에 방문해서 신체적인 질병에 의한 증상이 아니라는 전문가의 진단을 받더라도 잘 수긍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또 다른 의료 기관을 전전하면서 신체적 질병에 대한 검사와 진단을 요구합니다. 전문의 소견상 정신과적 문제가 원인이라는 진단이 내려져도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신체화 증상을 보이는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정신적 고통이나 심리적 어려움을 잘 자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정말 힘든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할 때, 마음이 보내는 일종의 ‘적색 신호’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그리고 신체화 증상을 경험하는 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바로 ‘억압’입니다. 여기서 억압(repression)이란, 우리의 정신이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생각이나 감정 등을 의식화되지 못하도록 무의식 속으로 억누르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의식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과 생각들을 계속해서 억누르다 보니 소화되지도, 배출되지도 못한 감정들이 계속 쌓여서 결국 신체화 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성격적인 특성으로는 책임감이나 인내심이 강하고 성실하신 분들, 도덕적 기준이 높은 분들이 특히 억압이라는 방어기제까지 많이 사용할 경우, 신체화 증상에 취약해질 수 있습니다. 또 평소에 마음속에 일어나는 분노나 불쾌감 등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그 자체를 불편해하거나, 이런 부정적 감정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그 감정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일들을 생략한 분들도 신체화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세심히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체화 증상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마음이 몸에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고, 그것이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후에는 그동안 자기 내면에 억압된 분노나 슬픔, 좌절감과 우울 등의 심리적 고통을 마주하고 억눌렸던 감정들을 하나씩 해소하고 치유해 나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 당면한 현실 속의 어려움이나 갈등 요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면, 이것들을 풀어 나갈 현실적 대안 및 지지 자원 등을 찾아보고, 믿을 만한 분들과 상의해서 지지를 요청하는 것도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운동이나 산책, 독서, 음악 감상, 여행, 소소한 만남이나 수다 떨기처럼 나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서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한다면, 불쾌감이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전문가를 통한 상담이나 심리치료를 받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신체화 증상은 그동안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심리적 고통을 무의식화 해 온 경향성이 굳어져 생긴 마음의 병이므로, 자신의 무의식을 탐색하면서 미해결된 심리적 문제와 힘든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던 분들이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해서 억압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처음에는 몹시 어렵거나,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체화 증상이 의심되거나 이미 오랫동안 겪고 계신 분이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 치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해 보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요즘 여러분의 건강은 어떠신가요? 딱히 신체적 질환이 없는데도 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거나 머리가 아파 오는 등 통증이 지속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보내는 SOS 신호가 아닌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당산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성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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