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계속되는 악순환의 반복으로 무기력증이 심해져요

정신의학신문 | 우경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스무 살에 ADHD 진단을 받고 현재 2년째 약물치료 중인 스물두 살 대학생입니다. 저는 ADHD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그리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해서 좋지 못한 대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편입학에 대해 알게 되어 이를 천천히 준비하고자 스무 살 시절 제가 가장 어려워했던 영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신과 수능 모두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은 저로서는 나름 뜻깊은 시도였고, 후에 병역 관련으로 정밀검사를 받았을 때 ADHD까지 진단받아 약물치료까지 진행하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좋은 변화를 가지게 되어 공부하는 습관이나 말, 행동 등이 유의미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 2학년 진학 이후 학교 수업이 비대면이 아닌 완전 대면으로 전환됨에 따라 학교가 있는 지방까지 내려가 지방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적응 문제가 심화되면서 심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생겨 대략 두 달간 학교 수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무기력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공부도 손을 완전히 놓게 되어 그동안 쌓아 온 기반이 거의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 방학 동안 꾸준히 집중적인 내원치료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부터 회복하고 점차 학교에 적응해 가면서 일상활동에 대한 습관화와 공부에 대한 습관화를 일구었지만, 이 또한 잠시뿐이었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한 날이 유난히 적었습니다. 1월에는 학원비 마련으로 알바를 했고, 2월은 그 영향으로 지쳐서 공부에 대한 의욕 상실로 무의미하게 보냈고, 3월은 마음을 잡고 하려 했으나 목표 진도를 한참 따라잡지도 못하고 겨우 과목 하나 이수. 4월은 다른 기초 수준의 과목을 빠르게 정리하고 문제를 풀면서 진도를 맞춰야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으나, 하루하루 딴짓만 하다가 시간이 갔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이것을 해결하고자 계획 수립과 실천이라는 큰 틀을 지속적으로 실행해 실질적인 행동을 통해 실천 결과를 얻고자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결국 이렇게 습관화의 형성을 위한 시도가 무력해지자 스트레스와 우울은 더욱 커지고 성격은 예민해져 자주 화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를 피하려고 스스로를 타인과 분리시켜서 점점 고립되니 문제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시작했지만 운동을 하고 난 뒤에만 잠깐 괜찮아질 뿐 실질적인 문제가 고쳐지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사라지지 않고 무기력함만 가득해지는 악순환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 잘 읽어 보았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몇 년 전 성인 ADHD를 진단받고, 이와 관련한 여러 어려움을 겪고 계신 듯 보입니다.

일단은 ADHD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드리자면, 고혈압이나 당뇨가 심리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듯이 ADHD는 심리적인 원인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ADHD는 뇌에서 발생한 뇌기능 장애입니다. 심리적인 문제는 오히려 ADHD 문제행동의 결과로 발생하게 됩니다.

아동들의 경우, ADHD의 주요 증상으로는 집중력 저하나 과잉행동, 충동성 등이 있고, 성인 ADHD의 경우 주의력의 문제보다 동반되는 불안, 우울 등의 문제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만약 다른 정신과적 동반 질환이 나타난다면, 증상이 심각한 것부터 치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다른 증상들이 ADHD 증상보다 가볍고, ADHD 증상으로 인해 다른 증상들이 나타났다면, ADHD를 치료하면서 다른 증상들이 같이 좋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연글을 보면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그동안 계획해 온 목표와 일련의 과정들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좌절감이 크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무기력감을 심하게 느끼시는 것 같고요. 그러나 사연자님께서 목표로 한 일들이 계획대로 달성되지 못했다고 해서 사연자님께서 한 시도와 노력들이 무의미한 것이 아님을 깨달으신다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무수한 시도와 노력들에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보통의 많은 사람들도 목표를 세우고, 계획한 대로 모두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ADHD 진단을 받는 어려움이 있으신 와중에도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계획하고 시도하고 노력하시는 일들만으로도 잘하고 계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마시고, 조금 긴 호흡으로 내다보셨으면 합니다. 당장 사연자님께서는 목표와 계획 달성에 대한 문제보다 대인관계 철수나 고립, 우울 문제, 무기력감, 분노 조절 문제 등 ADHD로 인한 동반 질환으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계신 듯합니다. 따라서 ADHD를 비롯한 이차적 문제들에 대해서도 꾸준한 정신과적 치료를 받으시기를 권고 드립니다.

 

성인 ADHD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는 교육, 코칭, 인지행동치료, 약물치료 등이 있습니다.

그중 인지행동치료는 인지(생각)와 행동의 변화를 통해 증상의 변화를 꾀하는 치료법으로, ‘난 해 봐야 안 될 거야.’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변화가 생기도록 돕는 인지 재구조화, 항상 꾸물거리다 막판에 초치기 하게 되는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계획하기, 시간관리, 우선순위 정하기 기술, 할 일 목록 만들기, 대인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해결 기술, 감정 폭발을 예방하기 위한 충동 및 분노 조절 기술 등이 있습니다.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 교육이나 코칭 등을 병행해 치료받는다면, 효과가 더욱 좋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ADHD를 진단받은 분들의 경우, 시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서류를 작성할 때 최소한 4시간은 걸리는데 2시간 만에 할 수 있다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계획한 공부를 할 때 실제 얼마나 걸리는지 실제 시간과의 차이를 비교하는 객관화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연자님께서도 실제 공부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계획상으로는 너무 적게 잡아 놓으시면 당연히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잡으신 것이므로 달성하기 힘든 게 당연합니다. 이로 인해 괜한 자책을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ADHD를 진단받은 많은 분들의 경우,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일을 시작하지만, 이내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요, 처음 계획한 일을 시작할 때는 혹은 몸이 힘들 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고, 집중력이나 컨디션이 좋을 때 난이도가 높은 일들을 해 보시기를 권유드립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자책이나 자기비판보다는 차라리 충분한 휴식을 가진 뒤에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해 비관하지 마시고, 긴 호흡으로 조금씩 내딛다 보면 조금씩 나아가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연자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또 많은 젊은 분들이 어제는 실패하고 오늘은 성공하고 또 내일은 실패하고 그 다음 날은 성공하며 살아갑니다. 누구나 그러한 인생의 과정 속에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고립감도 조금씩 극복 가능하리라 봅니다. 저희도 사연자님이 하루하루를 응원하겠습니다. 

 

강남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우경수 원장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