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따뜻한 봄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울적하다면?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차갑던 겨울바람이 멈추고 따뜻한 살랑바람이 불어올 때, 알록달록 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 바로 봄입니다. 봄이 오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레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 신학기가 시작되는 주변의 변화를 지켜보며 무언가 새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다짐을 다지게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런 봄날을 맞이하며 오히려 마음이 우울하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식욕이 줄거나 평소에 재미있던 일에 흥미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보통은 이렇게 울적한 마음이 잠시 들었다가 나아지지만, 특정 계절에 우울증 증상이 반복해서 나타나고, 그 기간이 2년 이상 지속될 때는 계절성 정동장애(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로 볼 수 있습니다.

계절성 정동장애는 대개 가을이나 겨울 무렵 시작되어 봄이 되면 나아지지만, 봄이나 여름에 증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봄에 나타나는 계절성 정동장애는 '역계절성 정동장애(reverse SAD)'로도 불립니다. 

 

봄철에 나타나는 계절성 정동장애는 주요 우울장애(Major Mood Disorder)와 유사하게 슬픔이나 무망감과 같은 전반적으로 저하된 기분, 일상적 활동에 대한 흥미 저하, 일상생활에 대한 동기 저하, 활력감소 및 피로감, 불면증을 비롯한 수면의 어려움, 주의집중이나 기억력 감소, 식욕이나 체중 감소, 일반적이지 않은 초조함이나 과민함이 특징입니다. 이와 함께 분노나 공격성이 동반되기도 하며 증상이 심한 경우 죽음이나 자살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겨울철에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은 일조량 감소와 활동량 감소에 따른 대인관계 위축, 호르몬 변화 등의 이유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추운 날씨로 해를 보기가 힘들고 외출하기도 힘든 겨울의 계절적 특성을 떠올려 보면 우울감이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그에 반해, 해도 길어지고 날씨도 따뜻해져서 활동량이 늘어나고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많아지는 봄에 우울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언뜻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봄이라고 하면 으레 벚꽃축제, 개나리, 진달래 개화, 새로운 계획 등 즐거운 일들을 많이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겨울철 계절성 정동장애의 원인 중 하나는 일조량 감소에 따른 세로토닌 감소에 따른 우울감 증가, 멜라토닌 분비 증가에 따른 피로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봄에는 일조량이 많아져 자연적으로 세로토닌 분비가 늘어나고 멜라토닌은 감소해 우울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되는데, 어째서 우울증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봄철 증가한 일조량이 우리 몸에 멜라토닌을 더 적게 분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이로 인해 수면 시간이 감소하면서 필요한 수면량을 충분히 채우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충분치 못한 수면은 우울감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햇빛에 노출되면서 세로토닌 분비가 활성화될 때, 세로토닌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불안 수준을 높이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세로토닌이 부족해도 문제가 되지만, 세로토닌이 과다할 때도 우리의 감정 조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와 함께 꽃가루 알러지와 같은 알러지 반응, 길어진 낮 시간으로 인한 일주기와 수면주기의 변화, 가족이나 친척 중 주요우울장애나 계절성 정동장애를 앓았던 가족력, 조울증을 비롯한 기분장애의 과거력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봄철에 나타나는 계절성 정동장애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봄철에 일거리가 적어지거나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것과 같은 직업적 특성이나 주거지 변화와 같은 환경적 변화 역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또, 봄철 기온이 상승할 때 체온 조절을 잘하지 못하거나 면역력 감소로 피로감을 느끼는 것, 주변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행복한 것처럼 보이는데 본인만 뒤처져 있거나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도 우울감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봄철의 우울감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1. 충분한 수면 시간 및 수면의 질 확보

침실에 햇빛이 너무 많이 들거나 너무 덥지는 않은지 잘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암막 커튼, 체온 조절을 위해 통풍이 잘되는 침구류를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 일정한 수면 패턴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보세요.

 

2. 적절한 운동과 일상의 루틴 만들기 

운동은 호르몬 조절 및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며, 몸에 적절한 피로감과 자극을 주어 수면을 돕습니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불안, 우울감을 감소시키는 효과도 가집니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잃었던 흥미와 동기를 찾을 수 있도록 공부나 취미, 새로운 것을 배우는 활동처럼 규칙적인 루틴을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3. 주변 사람들과 시간 보내기

우울하다고 혼자 지내고 사람들과의 연락을 피하다 보면 더 고립되고 우울해지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보고 싶어 할지, 내게 관심이 있을지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다닐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고민하고 있을 시간에 연락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여전히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내가 힘들 때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울감이나 외로움이 훨씬 줄어드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4. 건강한 식단 유지하기

우울할 때는 입맛도 없어지고 식사에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식사를 잘 챙기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자기 사랑의 시작입니다.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예쁜 식기에 담아서 스스로를 정성스럽게 대접해 보세요. 내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봄날에 잠깐 느끼는 멜랑콜리한 마음은 감성적, 낭만적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흔들리는 꽃잎을 보며 우리 마음도 잠시 함께 흔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계절의 낭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마음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면, 소개해 드린 방법들을 통해 다시 마음의 활력을 얻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증상이 심할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여러분의 봄날이 따뜻하기를 기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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