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불안한 사람의 사랑,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스물일곱 살의 남자입니다. 먼저 저는 TCI(기질 및 성격) 검사에서 불안도가 80%가 넘게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다 보니 일상이 불안 또 불안합니다.

최근에 교회에서 어떤 누나를 알게 됐습니다. 그 누나는 참 착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저는 사람들 사이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고 늘 외로워했습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누군가 내게 먼저 다가와 주지 않고, 또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저는 스스로가 너무 무가치한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집에서 부모님을 대할 때는 무척 차갑게 대합니다. 부모님에게 이렇게 대하는 것은 아마도 부모님과의 소통은 공감과 위로, 존중을 느끼기보다 강압적이고 과하게 참견하고, 정신적인 교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많은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또 유튜브 같은걸 보는 게 통제가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무언가를 성취해 보지도 못하고, 이런 제가 나쁘고 무능력하게 생각돼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였기에 애착인형처럼 늘 누군가를 곁에 두어야만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게 관심과 안정감을 주는 사람에게만 편안함과 소속감을 느끼고, 그런 이들 앞에서만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이렇듯 제가 곁에 두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잘 수용해 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보다 낮은 단계의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공략하기 쉽다고 해야 하나? 교만해 보이지만 솔직한 제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런 저에게 그 누나는 정말 정신적 모친처럼 느껴졌습니다. 평소에 저는 남자는 리드하고, 듬직한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나에게만큼은 내가 불안하고, 너무 외롭고, 스스로가 무가치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을 해도 들어 주고 공감해 주었기에 “누나가 필요하다. 나랑 사귀어 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누나에게 드는 감정이 이성으로서의 호감인지, 단지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다는 안정감이었는지 사실 잘 잘 분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연애 한 번 못해 본 저는 그게 사랑인지, 아니면 그 어떤 다른 감정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한번 알아보자.’는 마음에서 고백해서 사귀게 된 것이죠.  

그런데 누나와의 전화 통화를 통해 사귀기로 하고 제 불안함이 해소되자, 저는 그 누나에 대해 어떠한 이성적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좋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스스로가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가 있지? 난 누나를 정말 사랑한 게 아니라, 불안한 마음에 단순히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던 건가?’ 싶었어요. 그리고 데이트 첫날. 이 사람에게 어떠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더 확실히 알게 됐어요. 참 불안하고, 미안하고, 부담됐습니다. 상대방은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데, 나는 그런 그녀에게 확신 없는 모습만 보여 주는 것이 신경 쓰였고, 그로 인해 상대도 불안해할 것만 같아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전 하루 만에 헤어지기로 결심했어요.  

이 글을 쓰며 드는 생각은, 저는 제가 느낀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겁니다. 분명 저는 사귀기 전부터 같이 있을 때 액션은 없고 리액션만 있는 그녀에게 큰 호감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전체적으로 연인 관계의 느낌보다는 엄마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의 감정이 더 강했는데도 한번 사귀어 보는 바람에, 결국 누나 동생 사이로도 지내기 힘든,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네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자꾸 보고 싶고, 생각납니다.

혼자가 된 지금, 제 마음은 많이 불안합니다. 앞으로 또 사람들 속에서 불안해질 때 어떻게, 누군가를 의지해야 하며, 어떻게 이 왜곡된 것만 같은 사고를 인지해서 또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지… 무엇보다 제 불안한 마음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담을 받고 있긴 하지만, 한 시간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고,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느낌이 아닌 한 가지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어서 너무 아쉽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될지 알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평소에도 불안감을 자주 느끼시고, 또 기질 검사에서도 실제로 불안지수가 높게 측정된 만큼 ‘불안감’을 잘 다루어 내는 것이 현재 사연자님의 주된 고민거리로 보입니다. 더불어 이러한 불안감이 사람들과의 관계나 연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데 대한 고민도 깊으신 듯합니다.

기질적으로도 예민하고 불안도가 높은 사연자님께서 가정에서 부모님을 대할 때 “무척 차갑게” 대한다는 것과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 본 결과, 그간 부모님과 소통해 오셨던 방식에서 심리적 불편감과 어려움이 축적되어 온 부분이 있으신 듯하여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사연자님께서 부모님께 바랐던 것들은, 따뜻한 관심과 위로, 공감과 존중받는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바랐던 욕구는 빈번히 좌절되고 그 자리에 강압적이거나 과하게 참견하는 식으로 소통을 시도해 오셨던 부모님의 방식에서, 정서적 교감에 대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의 강압적인 태도는 사연자님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더욱 자극해 안정감을 획득하기도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사연자님께서는 교회 누나의 따뜻함과 포용력, 마음 깊이 공감해 주는 모습 등에서 호감과 이끌림을 느끼신 듯합니다. 그러나 정작 일대일 데이트를 해 보면서 상대에 대한 감정이 이성에 대한 이끌림이라기보다 자신의 의존 욕구를 채우기 위한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혼란감에 빠지셨던 것 같습니다.

 

사연자님께는 이 상담글을 통해 ‘애착’과 ‘의존 욕구’, 그리고 ‘자아 분화’ 및 ‘건강한 바운더리’ 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 이러한 심리적 개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스스로에 대해 성찰함으로써 자기 이해 및 앞으로 대인관계를 맺는 데 도움을 받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린아이는 주양육자와 연결을 유지하면서도 그로부터 안정적으로 분리되어야 건강한 자아가 형성됩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아 분화(ego differentiation)’라고 합니다. 우리가 안정적으로 자아가 분화될 때, 나와 양육자가 ‘우리’로 연결된 채로 각각의 존재로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자아와 관계의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이후의 친밀한 관계나 그 밖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내가 타인과 관계를 맺는 양상의 토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 분화가 건강하게 이루어지지 못할 때, 자아와 관계의 양상이 불균형해집니다. 즉, ‘우리’로 연결되지 못한 채 ‘나’와 ‘너’가 단절되어 버리거나, ‘나’와 ‘너’로 분화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우리’의 상태에 머물고자 합니다. 여기서 관계의 단절 양상을 보이는 것을 ‘과분화’, 과한 융합 양상을 보이는 것을 ‘미분화’라고 칭합니다.

사연자님께서 고민글을 통해 적어 주신 내용을 잘 들여다보면, 불안감 수준이 높고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관심과 보살핌을 바라며, 소속감, 의존에 대한 욕구 등이 높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사연자님의 현재 자아 분화 상태는 미분화된 자아,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는 희미한 바운더리 양상을 띠는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미분화된 유형은 아이의 높은 불안 성향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불안감이 높아 애착 욕구가 더욱 커지고, 양육자에게 더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건강하게 자아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 대인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왜곡을 낳기 쉽습니다. 역기능적인 교류 방식이 나타나는 것인데요, 그중 첫 번째로 ‘억제형’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과하게 두려워해서 누군가와 친밀해지고 싶지만, 정작 친밀해지려는 순간 과거에 경험했던 거절이나 좌절의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떠올라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 그래서 이들은 친밀해지고 싶은 욕구와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혼란스러움과 양가감정을 느끼기 쉽습니다.

두 번째로, ‘탈억제형’도 적정한 거리 설정에 실패하게 되는데, 이들은 사람들에게 과도하게 접근해서 애정을 갈구하거나 상대에게 간섭 혹은 통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이러한 자아 분화 상태로 성인이 되었을 때, 억제형은 자기 경계를 지키는 데 몰두하기 쉽고, 탈억제형은 다른 사람의 경계를 계속 침범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이때 억제형은 불안 성향의 기질을 가진 분들일 가능성이 높으며,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보다는 다가와 주기를 바라고, 관계를 맺더라도 상대가 뭔가를 해 주기 바라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사연자님께 필요한 것은, 건강한 바운더리를 새롭게 구축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이 건강한 바운더리 기능을 잘 작동시켜 나가기 위한 꾸준한 연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서 건강한 바운더리의 핵심은, 서로 친밀함을 나누고 협력할 수 있는 상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의 자기 세계란, 자신의 내면에 기반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즉, 자기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정서적인 자율성을 획득해 나갈 때 자기 세계도 건강하게 구축해 나갈 수 있습니다. 

미분화된 유형의 경우, 상대의 욕구나 감정, 기대 등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이 있어, 그것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내면화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진정한 자기 세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앞으로 사람들 속에서 불안해질 때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며, 어떻게 불안한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 질문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외부에서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구하려 하지 마시고, ‘자기 위로’ 기능을 발달시키고, 자존감을 향상시켜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위로 기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인간의 내면에는 ‘연민’이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고 위로하려고 하는 마음이지요. 이것을 스스로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해지고 힘들 때 나 자신의 불안한 마음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다독이고 위로해 주는 연습을 잠시라도 계속해 나가신다면, ‘자기 위로’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또 매일 아침 거울을 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미소 한 번 지어 주는 것도 자기 위로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방법입니다. 

또한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기표현 능력입니다. 자기표현을 잘한다는 것은, 결코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욕구, 생각 등을 제대로 자각해서 상대와 상황 등을 고려하여 솔직하면서도 절제된 표현을 할 줄 아는 것을 뜻합니다. 

사연자님께서 교회 누나에게 좋은 감정을 느끼고, 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면서 먼저 다가가셨던 노력은 굉장한 용기이자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좋은 신호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충분히 인식하고 정리하기도 전에 갑자기 너무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려고 시도하신 점은 조금 성급한 태도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지금처럼 자기 성찰과 관계에 대한 탐색 과정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연인 사이에서 적정한 거리를 설정하면서 건강하게 관계를 맺어 나가는 연습을 해 나가시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안감은 안정감으로, 미숙함은 성숙함을 향해 나아갈 사연자님의 발걸음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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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문요한(2018). 관계를 읽는 시간. 더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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