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해결하기 힘든 고민, 이게 신체화 증상일까요?

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제게 고민이 있는데 혼자 해결할 일은 아니고, 상대방이 도와주지도 않을 것 같아서 해결은 안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스스로 소화하지도 못하고요. 털어놓고 이해받지도 못하는 것 같아요. 

문제 상황을 막 마주할 당시는 불안감 증폭 등으로 수면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약을 먹어서인지, 시간이 지나서인지… 비정상적이지만 생활은 하고 있어요. 약 부작용인지, 신체화 증상인지 알 수 없지만 불편감은 있고요. 지금은 일을 쉬고 있는데 이제 일도 해야 해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궁금한 것은 해결되지도,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 털어놓지도 못한 고민을 계속 끌어안고 있어도… 꾹꾹 참고 기다리면 신체화 증상이 사라지나요? 제가 겪고 있는 것은 흉통이나 과수면, 일시적으로 오락가락하는 감정 기복, 붕 뜨는 기분 등인데, 약은 먹고 있습니다. 

지금 가진 고민은 직면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당사자가 아닌 이상 잘 털어놓지는 못하겠어요. 지금처럼 참고만 있으면 괜찮아질까요? 여기저기 여쭤봤는데 그냥 눈 돌리라는 듯이만 이야기하셔서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해결하기도 힘들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해결될 것 같은데,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고민’이라니 얼마나 답답하고 또 걱정이 많으실까 싶습니다. 

사연자님께서 걱정하는 고민거리가 어떤 내용이고,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어 주시지 않아 좀 더 실제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사연자님께서 하고 계신 고민의 내용이 신체적인 아픔까지 일으킬 만큼 결코 가벼운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흉통과 과수면, 감정 기복, 붕 뜨는 기분 등 기분 조절 및 수면 문제, 신체적 불편감 등을 호소하고 있으시네요. 그리고 이러한 증상들이 나타나는 원인이 해결이 힘들어 보이는 묵직한 고민으로 인한 신체화 증상인지, 현재 복용 중이신 약의 부작용 때문인지도 궁금하신 듯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문가와의 좀 더 면밀한 상담 및 경과 진행의 관찰 등이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하오니, 사연자님의 궁금증과 고민을 해결하는 데 작게나마 도움을 받으신다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로, 약 부작용에 대한 가능성을 살펴보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현재 어떤 약을 어떤 용도로, 어느 정도 기간에 걸쳐 복용하고 계신 건지 사연상으로는 알 수 없지만, 높은 불안감이나 불면증으로 인해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만약 사연자님께서 현재 경험하시는 불편감들, 과수면이나 흉통, 이상 기분 등이 시작된 시점이 약의 복용 시기와 맞물린다면 약의 부작용으로 인한 반응일 가능성도 있으니 이 점에 대해 담당 의사분과 상의해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두 번째로, 사연자님께서 언급해 주신 신체화 증상에 대한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신체화 증상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신체화를 경험하는 분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으로는 두통, 어지럼증, 소화 불량,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구토, 각종 신체 부위의 통증, 무감각, 근육 마비, 목 넘김이 어려움 등 실로 다양합니다.

만약 뚜렷한 내과적 원인이 없는데도 다양한 신체적 증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면 신체화 증상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불편감이 수년간 지속될 경우 ‘신체화 장애’라는 진단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주요 증상으로는 수년에 걸친 신체 증상의 호소와 더불어 자신의 건강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하는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지금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들이 심리적인 어려움과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고통에서 비롯된 신체적 증상이라면, 심리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 신체화 증상을 치료하는 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사실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계신 것 같고요.

신체화 증상을 경험하는 분들이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바로 ‘억압’입니다. 여기서 억압(repression)이란, 우리의 정신이 사용하는 방어기제의 일종으로 고통스럽거나 위협적인 생각과 감정 등을 의식화되지 못하도록 무의식 속으로 억누르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의식하지 못한 부정적 감정과 생각들을 계속해서 억누르다 보니 소화되지도, 배출되지도 못한 감정들이 계속 쌓여서 결국 신체화 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죠.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가지고 있는 고민을 계속 끌어안고 있으면서 기다리면 신체화 증상이 사라지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아니오.”입니다. 만약 사연자님께서 현재 겪고 계신 증상이 신체화에 의한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냥 꾹꾹 참고 기다리기만 한다면, 신체화 증상은 악화되거나 다른 신체적 통증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해결 가능한 고민거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도와주지 않을 것 같아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네요. 물론 그동안 사연자님의 경험치를 통해 내린 결론이겠지만, 상대가 도움을 거절할 것이라는 판단은 아직까지는 사연자님의 지레짐작일 뿐입니다. 그러니 용기를 내셔서 일단 도움을 청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비유하자면, 일단은 공을 상대에게 패스해 놓고 답변을 기다려 보는 겁니다. 그러면 상대가 다시 공을 던질지, 아니면 공을 받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겠지요. 물론 상대가 공을 받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는 한 번 공을 던져 봤으니까요. 

나의 고민 해결을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시도해 보는 것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일단 시도해 본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과 후회가 덜 남습니다. 비록 원하는 답변은 얻지 못했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더라도, 그에 대한 미련과 찝찝함은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도 한번 곰곰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돕지 않는다면 정말 다른 해결책은 없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분의 도움 외에 고민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지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열어 두고 다각도로 궁리해 보시는 것이죠. 직접적인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고민하시는 내용을 좀 더 장기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우회해서 해결해 나갈 방법은 혹시 없는지도 검토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노트에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연자님께서 노트에 문제 해결 방안을 정리해 보면서 요즘 느끼는 감정과 답답한 마음에 대해서도 함께 글로 써 보는 것도 감정을 억압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표출해 보는 건강한 방식 중 하나이니 시도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또 지금의 고민을 함께 나눌 친구나 가까운 지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수도 있습니다. 지인에게 나누기 어려운 고민이라면 이렇게 온라인 게시판 상담이나 커뮤니티에서 익명의 힘을 빌려 여러 사람의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있고요. 지금처럼 고민글을 올려 주신 시도는 아주 잘하셨다고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동안 사연자님께 어떤 고민이나 문제가 생겼을 때,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거라며 지레짐작하거나 혹은 회피적 태도, 미리 낙담하는 무의식적 경향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동안 갈등 상황이나 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회피적인 태도를, 심리적 어려움에 있어서는 억압을 많이 사용하셨다면, 이제부터는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시도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마음의 문제 역시 조금씩 직면하고 의식화해서 수면 위로 꺼내 오는 연습을 자꾸만 하셔야 합니다.

 

신체화 증상은 그동안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심리적 고통을 무의식화 해 온 경향성이 굳어져 생긴 마음의 병이므로, 자신의 무의식을 탐색하면서 미해결된 심리적 문제와 힘든 마음을 잘 들여다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생각과 감정을 억압하던 분들이 자신의 무의식에 접근해서 억압된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이 처음에는 몹시 어렵거나,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으니 이 부분도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연자님께서 현재 경험하시는 신체화 증상이 약으로 인한 부작용인지, 단순히 깊은 고민에 의한 단기적 스트레스 반응인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신체화 증상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 답변을 통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결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고민 해결에 대한 방향성이 잡히지 않고, 신체적 증상에 대한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으셨다면, 이와 관련해서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소에 방문하시어 정확한 진단을 받고, 그에대한 도움을 받으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아울러 지금 가지고 계신 고민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 볼 수 있겠지요. 모쪼록 지금 가지고 계신 고민과 신체화 증상이 잘 해결돼서 사연자님의 몸과 마음이 잘 회복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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