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이혼 후, 삶이 무너져내린 것 같아요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생활 일 년 만에 이혼하게 된 서른세 살 여성입니다. 다행히 아이는 없어요. 제 전남편은 누나가 많은 집안의 막내아들로 화목하게 자란 사람이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활달하고 사랑도 많은 사람이라 만나는 동안 저를 한결같이 아끼고 사랑해 줬어요. 나이도 여섯 살이나 많아서 저를 언제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봐주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평생 함께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어 6년 연애 끝에 결혼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결혼 후 시댁 관련해서 다툼이 잦아졌습니다. 이상하게 시어머님께서 저를 많이 미워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직장을 다니지 않고 친구와 사업을 하던 중이라 벌이가 변변치 않아서 못마땅해하시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래도 초기 자본 없이 시작한 사업이라 돈을 까먹진 않았어요. 만날 때마다 왜 자주 전화 안 하냐, 너희들은 둘이 버는 것도 아닌데 어딜 그렇게 놀러 다니냐, 아들(남편) 옷이 이게 뭐냐, 너 혼자 예쁜 옷 입냐 등등 상처 되는 소리를 하시고, 표정도 내내 안 좋으셨어요.

남편은 그때마다 어떤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오히려 제가 왜 말이 없냐며 화났냐고 하더라고요. 아까 내가 시부모님께 왜 혼난 건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게 무슨 혼내신 거냐 그냥 말씀하신 거지라고 해서 저는 제가 예민하고 이상한 줄 알았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직장을 구하려고 이력서를 넣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작은 회사에서조차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곤 했습니다. 동업한 친구와도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점점 자신감과 자존감이 떨어져 전화나 만남을 강요하는 시댁의 요구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시어머님 태도에 상처받고, 남편도 저를 감싸 주지 않고, 진짜 시짜짓 하는 집을 못 봐서 그렇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연애할 때는 공감을 잘해 주던 사람이 시댁 관련해서는 한 번도 위로나 공감해 준 적이 없습니다.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면서 다툼이 심해졌고, 심할 때는 제 입에서 욕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부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그때뿐이었습니다. 

이혼 결정 과정에서 남편이 그동안 저와 싸울 때마다 제 이야기를 어머님께 모두 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남편이 어머니와 사이가 굉장히 가까운 편이라는 것은 이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연애 초반부터 결혼 과정, 신혼여행에서 저와 다툰 이야기, 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지난 6년간의 모든 이벤트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물론 남편이 사사건건 고자질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그 자체만으로 충격이고 배신감이 컸습니다.

시어머니가 저를 못마땅해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고,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어 평생 함께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먼저 이혼 통보를 했고 다툼 끝에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미루고 아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더 후회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마음이 아픕니다. 남편은 시댁 문제만 빼면 굉장히 좋은 사람이었어요. 다정하고 사랑도 많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무엇보다 한결같이 저를 사랑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 저를 많이 사랑해 준 만큼 저도 남편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천주교였던 제가 시어머님 권유로 남편의 종교를 따라 개신교로 개종까지 하고 매주 교회도 같이 갔습니다. 그만큼 남편을 사랑했기에 한 결정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더 컸나 봐요.

하지만 단순히 시댁 문제를 떠나 정신적으로 부모와 독립하지 못한 사람과는 어떤 문제도 헤쳐 나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본인은 그게 문제인지 모르는 상황이었고요. 이혼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앞으로 제가 이 아픔을 완벽히 극복하고 새 삶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가슴이 아프고 사업도 친구에게 짐만 되는 것 같아 저는 빠진 상황입니다. 다행히 친구는 저를 이해해 줬지만 미안한 마음만 들고 너무 무기력합니다. 제 인생이 이제 끝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남편과 좋았던 추억도 계속 생각나고 제가 잘못했던 말들도 떠오릅니다.

먼저 이혼을 통보한 데 대한 죄책감도 심합니다. 제 가족들에게도 미안하고 제 인생이 결혼과 이혼을 끝으로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아요. 전남편을 알기 전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쳤던 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주눅 들고 부정적인 제 모습만 보입니다. 결혼부터 이혼까지 모든 것이 저의 선택이었고 그 결과에 대한 자괴감이 너무 큽니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이혼 후 여러 가지 감정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같습니다. 전남편분에 대한 그리움과 행복했던 추억, 그 모든 과정이 오롯이 본인의 선택이고 결정이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데 대한 죄책감과 후회 등 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으시군요. 7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의 이별, 이별 후 느끼는 감정들을 소화하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사연을 읽으면서 사연자님께서 전남편분을 ‘좋은 사람’, ‘나를 한결같이 사랑해준 사람’이라고 반복해서 표현하시는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댁과의 갈등,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이혼을 결정했지만, 여전히 사연자님께는 ‘좋은 사람’으로 전남편분이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과의 이혼을 결정했다는 것이 더 안타깝고, 아쉽고, 미련이 남는 것이 아닐지요. 이혼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하셨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 문제만 없었다면 지금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 있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헤어진 상대를 미워하고 악감정을 갖기보다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떻게 보면 감사한 일이기도 하고, 그만큼 사연자님과 전남편분의 사랑이 깊었다는 데 대한 반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남편분을 위해 종교를 바꿀 정도로 많이 아끼고 신뢰하셨기에 그 관계가 깨어졌을 때의 상처와 아픔 역시 큰 것이겠지요. 이미 예전과는 같을 수 없는 관계임을 알지만 행복하고 좋았던 그 시간이 많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일 테고요. 

 

누군가를 사랑한 시간만큼 이별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보내주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혼은 사별, 실직처럼 삶에서 중요한 사건(Major Life Events)에 해당하며, 상실의 일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별처럼 전배우자가 물리적으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혼으로 인해 나의 세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후에는 부모 이상으로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하고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삶에 등장하지 않게 된 것은 매우 큰 변화이며, 상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상실을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전배우자로부터 받았던 정서적 지지나 경제적 지원의 고갈, 전배우자 가족과의 관계 단절, 공통된 지인들과의 관계 변화, 거주지 변화 등 이혼으로 인해 변화된 내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낯설고 어색하며,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잃어버린 것들이 새삼스레 더 각인되고, 이혼 이전의 삶에서 그리운 부분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사연자님께서 전남편분의 좋은 점과 함께 한 추억을 떠올리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아울러 결혼과 이혼이 나에게 준 영향을 떠올리며,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의 나와 현재의 내가 매우 다르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현재 사연자님께서도 전남편분을 만나기 전의 자신을 그리워하며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쳤던’ 과거의 나와 ‘부정적이고 주눅 든’ 현재의 나를 비춰 보며 나의 잃어버린 모습을 안타까워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또, 결혼과 이혼이 본인의 결정과 선택으로 한 것이라는 생각에 자책감과 괴로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많이 느끼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잘못이다.’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스스로를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위축되시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업에서도 짐만 되는 것 같다고 하신 것 역시 결혼과 이혼 과정에서 그간 잘못된 선택을 해왔기에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일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걱정과 염려로 인한 것이 아닐까요. 

 

물론 전남편분을 배우자로 선택하고, 결혼과 이혼을 결정한 주체는 사연자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남편분과 시어머님 사이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 전남편분이 심리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것은 사연자님이 선택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집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든 선택이 항상 맞는 선택이거나 결정일 수는 없으며, 그 결과를 우리가 미리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선택을 내릴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나 변수는 우리의 선택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 변수를 맞닥뜨렸을 때는 그저 그 상황에서 최선이라고 선택되는 결정을 내리며 충실하게 삶을 이어 갈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돌발 상황이나 변수까지 ‘내 선택’이며 ‘잘못된 내 선택’으로 벌어진 결과라고 생각하면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낮아지게 됩니다. 미리 앞을 내다보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거나 이미 한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위축되고 결정하거나 행동하기를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연자님 역시 지금 이런 마음이 아니실까요. ‘내가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정법 ‘what if’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시면서요. 물론 이혼이 그 상황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더 늦기 전에 이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었다는 점에 대해서 사연자님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고, 자신감과 자존감이 많이 낮아진 상태에서 이혼 후 혼자 개척해 나가야 할 삶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과거의 기억 중 행복했던 부분들을 계속 떠올리면서 그리워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만약 현재까지 결혼생활이 이어졌다면 어떨까요? 사연자님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셨을까요? 어느 누구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혼을 선택하셨던 본인의 선택에 조금 더 자신감과 확신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혼자 되는 것이 두려워서, 경제적 자립이 어려워서 등 다양한 이유로 이혼하지 못한 채 불행한 삶을 지속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에 반해 사연자님은 결단력과 실행력 있게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셨습니다.

또, 비록 이혼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사연자님이 사랑했고 배우자로 선택한 분은 현재에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 만큼 훌륭하고 사연자님을 아껴 주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분을 선택하고,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런 분을 알아보고, 선택한 사연자님 역시 그만큼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요. 

이혼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소화하는 과정에서 아직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시기에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자신감이 전보다 낮아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시기를 잘 보내고 변화된 삶에 점차 익숙해지다 보면 예전의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쳤던 모습을 되찾으실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이혼 후 일 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일 년이 길다면 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남편분과 함께 한 7년을 되돌아보고 이별을 받아들이는 데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너무 서둘러서 이 이별로부터 벗어나 괜찮아져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걸리더라도 충분히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별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하며, 지나간 시간으로부터 배운 것, 얻은 것들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유드립니다. 아울러 가까운 친구나 가족 등에게 이혼을 겪으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나누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기 쓰기나 명상, 산책 등을 통해 사연자님이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습니다. 무기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일상적 활동을 회복하고 매일의 루틴을 만들어 볼 수 있습니다. 삶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몸을 일으켜 작은 일부터 시작하면서 통제감과 유능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정적인 스케줄이나 외출 계획을 만들고 활동을 하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친구분께 미안해서 사업에서도 손을 뗀 상태라고 하셨는데, 일주일에 한두 번 회의에 참여하거나 사업장에 방문하는 것처럼 작은 영역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일에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고 지레짐작하기보다, 친구분을 어떤 영역에서 도울 수 있을지 소통하며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시면서 자신감을 키워 가시면 좋겠습니다. 사업이 아닌 다른 분야로의 진출을 원하신다면, 직업훈련 등을 고려해 보실 수도 있습니다. 

 

흔히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합니다. 결혼생활에서는 이혼이라는 끝을 맺었지만, 사연자님의 삶에서는 제2막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막을 올리기까지 무대 뒤편에서 준비해야 할 것들도 있고, 막간의 준비 시간도 필요할 것입니다. 부디 이 시간을 잘 맞이하셔서 새로운 인생의 막을 시작하실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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