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왜 이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너 피해망상 아니야?’라는 말 들어 본 적이 있나요? 이런 말들을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면 잠시 그 사람의 언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상대방이 나의 생각 또는 감정을 반박하고, 부정하고, 비난하면서 나로 하여금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것은 상대방의 ‘가스라이팅’일 수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자는 점점 자신감을 잃고, 불안해지고, 우울해지며, 사회로부터도 고립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스라이팅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이 무엇이며,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먼저,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사실이나 사건을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상대방의 기억, 인식 또는 정신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리적 조작 중 하나를 뜻합니다. 본래 ‘가스라이팅’ 용어는 1944 년 영화 <가스 라이트(Gaslight)>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남편이 집에서 가스 램프를 어둡게 합니다. 남편이 어둡게 해 놓은 것을 부정하고, 아내가 했는데 모른다고, 아내가 스스로 미치고 있다고 믿게끔 합니다. 이 영화로 ‘가스라이팅’은 범인이 현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사건을 잘못 표현하며, 피해자의 기억과 인식을 조작하는 감정적 학대를 나타내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영화 속 아내처럼 가스라이팅의 피해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지 믿음과 자신감을 잃고, 자신을 보호하고 믿어 주는 자존감도 낮아집니다. 그러면서 피해자는 불안하고 우울해지며, 낮은 자존감과 혼란감 등 부정적인 심리 증상을 경험합니다. 가스라이팅은 피해자의 정신 건강에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감정적인 학대입니다.  

가스라이팅은 단순히 피해자의 기억과 인식을 조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스라이팅은 거짓말하거나 부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희생자의 감정과 경험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것을 포함하여 많은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피해자는 현실에 대한 자신의 감각과 인지력을 믿지 못하고, 오로지 가해자에게만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조종할 수 있는 통제력과 권력으로 점점 피해자를 고립시킵니다.

피해자를 고립시킴으로써 정신건강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끼칩니다. 피해자는 자신의 인식과 판단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철수하거나 검증 및 지원을 위해 범인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점점 고립되고 외로움을 느끼며, 자기 자신을 포함한 주변인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는 그 상처와 왜곡된 인지가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며,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개인의 정신건강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치고, 주변 관계까지 망치는 가스라이팅, 알아차릴 수 있는 말과 행동들이 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명확하게 경계를 정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만약 이미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연구에 따르면, 가해자가 어떻게 가스라이팅을 하는지에 대해 분별할 수 있는 피해자는 가스라이팅에 저항하고, 이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다고 해도, 나의 관점과 경계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자신을 보호함으로써 나의 통제감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주위의 사회적 지원은 매우 도움이 됩니다. 2017년 Journal of Interpersonal Violence 심리 연구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을 당한 피해자는 더 높은 불안과 우울 증세를 보였고, 사회적 지원이 부족한 것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회적 지원이 있을수록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피해자가 신뢰할 수 있는 친구나 가족, 상담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여러분 주변에서 혹은 여러분께서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거에 나의 삶에서 누군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은 없는지, 혹시라도 있다면 그것이 나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가까운 누군가에게 내가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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