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남편을 더 이해하고 싶습니다

정신의학신문 | 이호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결혼 15년차입니다. 최근 그동안 쌓였던 시댁과 남편의 중간 역할로 인해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너무 힘들어 저만 시댁과 절연한 지 4개월이 흘렀습니다. 

남편을 아는 사람은 모두 남편을 ‘착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어떤 말을 해도 항상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합니다. 본인 자존심이 상해도요.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뿐, 본인은 노력했다고 그 과정을 봐 달라고 하지만, 결과는 결국 우리 가정보다 시댁을 항상 우선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동안 저도 남편한테만 불평불만을 이야기하고, 시댁에는 제 감정을 숨긴 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돌아보니 이 부분이 후회가 됩니다. 제가 참는 게 곧 우리 부부의 행복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부는 나르시시스트인 것 같습니다. 일흔을 바라보는 배우자와 자식들을 향해 아직까지 폭행과 폭언이 심하며 평생 무능력하고 술 주사가 있습니다. 시모는 이혼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시부한테 덜 당하기 위해 자식들을 희생시킵니다. 40대인 자식이 아버지한테 폭행과 폭언을 당해도 먼저 사과하라고 시키십니다. 온 가족이 시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제 남편은 세상 착한 효자입니다. 부모님의 말을 거절할 줄 모릅니다. 저도 이런 시모가 안쓰러워 남편의 행동들이 올바른 행동인 줄 알았습니다. 시댁은 뭐든 당연합니다. 자식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고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서운하다는 표현만 잘하십니다. 남편만 이런 시댁 일들로 인해 그때마다 저에게만 미안하다는 말뿐 부모님께는 그 어떤 말도 못합니다. 부모님은커녕 항상 집안일을 회피하는 동생에게도 아무 말조차 못합니다. 제 눈에는 동생이 형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착한 남편을 이해 못하는 제가 나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몇 가지 이해가 안 되는 남편의 행동들을 적어 봅니다. 

- 매년 시부 생신 때마다 시부의 다섯 형제와 그 자식들 그리고 손주들까지 3대가 모여 식사를 하는데 그 식대를 우리 부부가 계산합니다. 남편에게 시동생과 같이 계산하자는 제 의견을 동생한테 말하지 못합니다. 케이크조차 사라는 말을 못합니다.

- 시모가 편찮으신데 요양원 거부로 가족의 간병이 필요했습니다. 맞벌이인데 주말마다 저희 집으로 모셔서 간병을 했고, 시동생과 나눠서 하자는 제 의견을 동생한테 말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시모가 편찮으셔서 속상해하는 시동생의 짜증을 남편은 다 받아주고 있더라고요. 


시댁은 사소한 일들까지 당연하게 우리 부부에게 요구하고 남편은 당연한 듯 본인이 다 합니다. 시모가 불쌍하다는 이유로, 제 감정과 상관없이 우선시합니다. 항상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시모를 따릅니다. 이런 남편의 행동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자라온 환경 탓인 것 같습니다.

남편은 시댁 일만 아니면 너무 좋은 사람이고, 또 사랑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세상 좋은 아빠이고요. 우리 가족을 향한 남편의 사랑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편의 가족 때문에 몸과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남편이 밉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제 어린 시절 때보다 상처가 더 큰 것 같습니다.

15년 동안의 시댁에 제 감정을 숨기고 애쓴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그동안 제 감정을 직접 시부모님한테 표현하지 않고 남편에게만 쏟아낸 부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댁과 거리 두기를 하려고 합니다. 공황장애 때문에 출근을 못하게 되면 안 되거든요. 남편을 조금 더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15년의 결혼 생활만큼 그간 시댁 일로 얼마나 속앓이하며 마음을 끓이셨을지 사연자님의 고충을 헤아려 보게 됩니다. 

사연자님께서 그동안 결혼 생활을 해 오시면서 시댁과 관련해 겪으신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그중에서도 남편분께서 결국에는 아내분과 꾸리신 가정보다 시댁을 우선시한다는 데 대한 서운함과, 또 그로 인해 시댁과 관련해 현실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많은 일들이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하물며 사연자님 부부께서 시댁 식구들을 위해 수고를 무릅쓰고 감내하는 부분에 대해서 그 어떤 인정이나 고마움의 표현,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며 무척이나 속상하고 화도 나셨을 것 같아요.

만약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남편분께서 표현상으로도 시댁의 편에 서는 모습을 보였다면, 아마 사연자님께서도 남편분께 속 시원히 따지거나 맞서기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남편분께서는 시댁의 요구가 과하다는 것도, 또 그로 인해 사연자님께서 힘들어한다는 것도 다 안다면서 사연자님께는 미안하지만 이해를 구해 왔던 상황이기에, 사연자님께서는 차마 남편분을 대놓고 탓하지도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항상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행동으로는 시댁을 우선시하는 모습들에 많이 지치셨을 테지요.

어찌 보면 시댁뿐만 아니라, 사연자님과 자녀에게도 자상하고 ‘착한’ 남편이기에, 시댁과 관련된 문제들을 바로잡고, 경계를 명확히 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사연자님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은 죄책감과 혼란감도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사연자님만 참으면 분란이 없을 거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남편과 시댁에 대한 불만들을 참아 오셨던 거고요. 한편으로 “남편을 더 이해하고” 싶다는 사연자님의 고민이 ‘남편이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너무 힘들다.’는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사실 가정사에 대한 상담, 특히 부부 사이의 관계나 갈등을 풀어 나가는 것에는 정해진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눈에 띌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가정마다, 또 가족 구성원마다 개인적인 특성이나 히스토리가 있고, 가족 구성원 간 관계의 역동이 얽히고설켜서 심도 있는 접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래서 사연자님께서 도저히 남편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전문의라고 해서 억지로 이해시켜 드릴 수는 없다는 점을 아쉽게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오히려 사연자님께서는 그동안 시댁과 관련된 문제는 충분히 인내심을 발휘해서 남편분을 이해해 주셨기에, 더 이상은 인내심에 한계가 오신 게 아닐까 싶은데요, 이해가 안 되는데 자꾸만 이해하려고 하니 마음이 너무 괴로우실 수밖에요.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편분을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으셔도 괜찮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먼저 남편분을 이해해 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여기서 ‘남편분에 대한 이해’란, 사연자님께서 남편분의 모든 부분을 포용하거나 맞춰 주라는 의미가 아니라, 남편분의 성장 과정을 따라가서 지금 원가족과 맺는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해 보자는 뜻입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남편분은 원가족과의 건강한 분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경험하며 자라오셨지만 어머니로부터도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셨기에, 오히려 자신이 어머니를 보호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과잉 책임감’을 키우면서 성장하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아버지께 당한 학대의 기억과 안타깝게도 현재까지 진행되는 아버지의 폭행 및 폭언으로 인해 어머니를 지켜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고요. 물론, 이제는 노모가 되신 시어머니의 안전을 위해서 신경 쓰는 것은 자식 된 도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과, 과잉 책임을 짊어지면서까지 해야 할 말을 못하거나, 원가족의 과한 요구를 모두 들어주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이죠.

남편분이 시댁의 과한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시어머니가 느끼는 고통에 자신의 감정을 과하게 이입하는 데서 오는 심적 괴로움도 한몫하는 듯 보입니다. 남편분께서는 과거에 가정폭력 가해자(아버지)로부터 피해를 입은 어머니가 같은 피해자 입장에서 무척이나 가엽고 안쓰러울 것입니다. 

자신은 새로 가정을 꾸려 나왔기에 물리적으로 그곳에서 물러나 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기에 가슴 깊은 곳에는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있으실 테고요. 그러나 이렇게 남편이 시어머니를 보호하는 데 집착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보호받고 싶었던 연약하고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머니께서 지금처럼 아버지의 폭력에 계속해서 노출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한 남편분은 끊임없이 어린 시절의 학대 기억이 자극되면서 어머니의 구원자 역할을 자처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남편분은 관계에서도 갈등이 생기는 것에 매우 취약한 분입니다. 안 그래도 평소 불안과 긴장 수준이 높을 가능성이 큰데, 갈등은 곧 이런 불안감을 자극해서 견디기 힘든 상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성적 접근이나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불편감을 덜어 버리고자 빠른 화해나 사과를 시도함으로써 갈등 상황이 속히 종결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회피하거나 과도하고 부당한 요구에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고 수락해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이유가 상당 부분 작용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매번 이렇게 시댁에서 바라는 기대를 채워 주고, 요구에 부응하느라 정작 남편분 자신의 욕구는 무엇인지, 사연자님이나 사연자님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로 인해 사연자님과 현재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 잘 살피지 못하고 여기까지 흘러오신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사연자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지나온 세월이 많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드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시댁을 위해 많은 것을 인내하고 양보하며 포기해야 했던 부분이 있으셨을 테니까요. 그래도 다행히 남편분께서는 사연자님과 자녀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 그 애정을 실천으로 보여 주는 가장으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하신 분 같아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사연자님 또한 남편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동안의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더라도 마치 ‘빚을 갚는’ 심정이었을 남편분에게는 필요했던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신다면, 억울함이 좀 덜어질까요? 물론, 남편분께서 ‘갚아야 할 빚’ 같은 것은 없습니다. 오히려 ‘받아야 할 빚’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어요. 다만, 남편분의 마음이 그런 상태였으리라는 짐작에서 한 표현이지요.

 

비록 많이 야속하고 억울하시겠지만, 두 분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해 오셨으니, 과거는 그만 흘려버리고 이제부터는 사연자님 부부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시댁과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데 집중하셨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댁과 관련해 남편분과 솔직하고 심도 있는 대화를 해 보는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가지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꺼내실 때는, 그동안 시댁 일과 관련한 사연자님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를 권유 드립니다. 

예를 들면, “당신은 우리 가족에게 너무도 소중한 사람이야. 소중한 남편이자, 아빠이지. 그런 당신이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로 시아버지께 폭행과 폭언을 듣는다는 것, 그리고 사과까지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힘들어. 그런 모습을 보는 게 우리 가족에게도 상처가 되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 같이 용기를 내 보자.”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나열식으로 적어 보는 것이 생각을 정리하고, 남편분께 하고 싶은 말들을 명확히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남편분과 대화할 때 주의하실 점은, 남편분을 비난하거나 탓하기보다 사연자님의 감정이나 정리된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짧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남편분의 감정이나 생각에도 충분히 귀를 기울여 주세요. 이제부터는 한쪽의 희생이나 주장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대소사와 관련해 함께 뜻을 모으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사연자님께서 시댁 일과 관련해서 부부가 함께 허용할 수 있는 선을 정하시는 겁니다. 과거의 사례를 들어 설명해 보자면, 시부 생신 때 식사 대접을 할 수는 있지만, 이제부터는 시부모님 또는 시부모님의 형제들까지만 초대하는 선에서 계산하는 것으로 부부가 미리 합의를 보고이에 대해 시부모님이나 동생분에게 이야기하는 거죠. 

시부모님 생신 때 식대를 지불하는 주체는 두 분이므로, 두 분께서 이 부분에 대해 합의를 보셨다면 시부모님이나 동생분이 불만을 제기해도 이해를 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의 불만은 그들의 것이에요. 남편분께는 부모를 비롯한 타인의 요구를 모두 들어 줄 필요는 없으며, 불편한 감정에 대한 책임까지 자신에게 있지 않다는 점을 잘 이해시키는 과정이 있어야겠죠.

기존처럼 시부의 형제들의 손주들까지 대접해야 한다면, 그 부분은 부모님이나 동생분이 부담하라고 요구하시면 됩니다. 그럴 수 없다고 하시면, 그 이상은 식대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의사를 한 번 더 확고히 말씀드려야겠죠. 좀 더 확장해서 동생분도 식대를 나눠서 계산하는 것에 대해서도 남편분과 의논해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편분과 사소한 갈등이나 의견이 엇갈릴 때도 있으실 거예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잠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고, 서로 한 발씩 양보하면서 다시 합의점을 찾아 나가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렇게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서로가 합의하고 만족할 만한 결정을 이끌어 내는 연습을 자꾸만 해 보셨으면 해요. 만약 그로 인해 남편분께서 다소 예민해지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신다면, 불안해하지 말라고 조금 다독여 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시부의 폭행과 폭언에 대해서도 남편분과 상의하셔서 좀 더 단호한 대처 방법을 찾아보셨으면 합니다.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할 시 단호하게 신고하거나 시부에게 정신과 상담을 권유하시는 것도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또 오랫동안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오신 어머니 역시 심리치료나 상담이 필요할 수 있으니 이 부분도 남편분과 상의하셔서 진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편분과 시댁 간에 건강한 분리가 일어나고, 서로가 적절한 거리와 균형을 찾아가기까지는 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인내심 있게 성실한 삶을 일구어 오신 두 분인 만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서로 독려하면서 나아간다면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서대문봄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호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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