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거절을 당하면 화가 나요

정신의학신문 | 이규홍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오늘 아버지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어요. 제 옆에 홀로 여행 오신 분이 전문 카메라를 들고 계셨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저기요!” 하고 불렀는데, 외면하고 가시는 겁니다. 제가 한 번 더 “저기요!”, 하고 부르니, 아버지께서 제 팔을 끌어당겼습니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래서 괜히 아버지께, “저 사람이 거절하는 건 ‘그냥 날 무시했네.’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데, 아빠가 날 막은 건 화가 나고,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별일 아니라는 거 압니다. 당연히 거절할 수 있죠. 그래서 여기에 사연을 올려요. 제가 왜 그렇게 화가 나고, 속상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는지…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까지도 왜 그런 서글픈 마음이 가시지 않는지 모르겠거든요.

제 고등학교 시절 비슷한 기억도 떠올랐는데, 급식 시간에 친구랑 함께 앉고 싶어서 다른 반 아이에게 한 자리 옆으로 이동해 줄 수 있냐고 물었거든요. 저는 굉장히 상냥하게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싫은데?”라는 차가운 답변이어서 당황하고 화가 많이 났던 기억도 있어요.

만약 ‘아빠가 아닌 다른 친구가 나를 막았더라도 그렇게 화가 나고 섭섭하고 속상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가 거절당하는 것에 이리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아버지와 단둘이 여행하시는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고 관계를 중요시하는 분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버지와의 소중한 데이트 시간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거절당하고, 또 아버지께서 사연자님의 행동을 막아섰다는 생각에 많이 속상하셨던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연자님 스스로도 그 상황 자체는 크게 화가 나거나 많이 속상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으로는 잘 인지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께서 사연자님의 행동을 막아선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고, 속상하고 슬픈 마음이 들었던 것이 스스로도 잘 납득이 되지 않아 이렇게 사연을 올려 주셨겠지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모두 조금씩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가 한 부탁이나 제안을 거절하는 상황이 썩 유쾌하거나 좋은 상태라고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러나 순간적으로 불쾌할 수는 있지만, 곧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 ‘어쩔 수 없지, 뭐.’ 하며 거절당한 그 상황을 수용하기도 하죠.

그런데 유독 ‘거절’에 민감한 분들도 계십니다. 이런 성향의 분들은 거절이나 거부당하는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십니다. 이를 ‘거절 민감성(rejection sensitive dysphoria)’이라고 하는데요, 거절 민감성이 높은 분들은 실제로 자신의 부탁이나 요청을 거부당하거나, 거부당했다고 느꼈을 때 마치 자기 존재를 거부당한 것처럼 극심한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끼게 되죠. 

실제로는 자신이 한 부탁이 거절당했을 뿐인데, 자기 존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확대 및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심리적 고통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분들은 상대가 거절한 것은 ‘나’라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내가 한 부탁이나 요청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격해진 자신의 감정을 잘 다독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거절 민감성이 높은 분들은 또한 작은 자극에도 크게 놀라거나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또 거절에 민감한 것과 비슷하게 작은 비판이나 비난에도 잘 움츠러들고 수치심이 자극되기도 하죠. 

여기서 ‘수치심’이란, 자신을 부끄럽게 느끼는 마음입니다. 심리학적으로는 거부당하고, 조롱당하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죠. 심리학자인 에릭슨에 따르면, 이러한 수치심은 만 2세부터 느끼기 시작하며, 유아 초기에 형성된 수치심이 생애 전반에 걸쳐 성격적 특성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고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치가 있고, 존중하며, 사랑할 때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인 수치심이 과도해지면, 당연히 이러한 자기 존중감은 위협받고, 실존의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수치심이 꼭 나쁜 감정만은 아닙니다. 수치심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잘못에 대해 통찰하거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경험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수치심이 지나칠 경우, 타인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 쓰게 됨으로써 자존감이 저하되거나, 자기 존재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될 수 있으므로, 우리 마음속에 수치심이 너무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죠. 

다시 거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사연자님께서 두 가지 일화를 통해 그리고 그동안의 또 다른 경험들로 인해 스스로 거절에 민감한 편이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자신이 혹시 완벽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이를테면, ‘나는 실수하면 안 되고, 실수는 수치스러운 일이야.’, ‘누군가가 감히 나를 거절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설정하고,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모습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또 비록 누군가가 나를 거절하더라도 ‘나와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부모님만큼은 언제든 내 편이어야지.’ 혹은 ‘아버지에게 항상 믿음직하고 멋진 모습만 보여 드려야 하는데….’와 같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환상이 있으셨던 것은 아닌지도 말이죠. 

사연자님께서 낯선 분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상대를 불렀지만, 그분께서는 사연자님의 부름을 듣지 못했거나, 들었지만 그날 바쁜 일이 있거나 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던 길을 재촉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그만 부르라는 뜻으로 아마 사연자님의 팔을 당기셨을 테고요. 

이때 사연자님의 마음속에 든 생각, 즉 무의식적으로 스쳐 지나간 자동적인 생각은 무엇일까요? ‘저 사람이 날 무시하네?’, ‘내가 무시당할 만큼 하찮은 사람인가?’, ‘어, 아버지까지 날 막아서네.’, ‘아버지도 날 무시하시는 건가?’, ‘아버지까지 날 무시하는 건 정말 참을 수 없지.’ 혹시 이런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 것은 아닌지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수 있습니다만, 사연자님의 마음속 생각들을 잘 헤아려 보신다면 어떤 부분에 왜곡된 사고가 작동되고 있는지, 또 그러한 사고가 어떤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지 살펴보면서 사연자님의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날 만났던 낯선 사람이나 아버지께서 정말 사연자님을 무시해서 그렇게 행동하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급식 시간에 있었던 일화도 잠깐 살펴볼까요? 친구가 자리 이동 부탁을 거절했을 때, 사연자님께서 굉장히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연자님께서는 굉장히 상냥하게 물어봤는데, 돌아온 대답은 차가운 거절이었기에 많이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고 말이죠. 물론 이런 경우에도 누구나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 있습니다. 얼핏 생각했을 때 들어주기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고, 웬만하면 들어줄 거라 생각했기에 상대의 거절을 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상대가 나의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거나, 어려운 부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이고, ‘나의 시점’이기도 합니다. 상대에게도 얼마든지 나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인정한다면, 크게 기분 상할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는 것이죠. 여기서 사연자님께서 느낀 감정을 부정하거나 탓하려는 것은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셨으면 합니다. 관점을 조금만 더 상대에게로 옮겨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러려니….’ 하고 좀 더 유연하게 상대의 거절을 받아 넘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탁하거나 요청하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어떤 부탁인지, 어떤 상황인지, 어떤 관계에 있는 사람이고, 상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우리의 부탁이나 요청은 수용되기도, 거절되기도 하는 것이죠.

이러한 무수한 경우의 수와 요인들을 우리가 모두 컨트롤할 수도, 또 전후 사정을 알 수도 없습니다. 거절한 사람에게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나름의 사정이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혹은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임에도, 선뜻 내키지 않아서 거절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또한 그 사람의 선택이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의 선택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거절당하는 것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거나 그때마다 상처를 받는다면, 우리의 마음은 과도하게 힘들어질 수 있고, 또 다른 기회에 필요한 요청이나 부탁을 하는 데 주저하다가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항상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때는 그가 어떤 응답을 하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을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도, 모든 이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또 그럴 필요도 없지요. 나 역시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인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가 환상이나 이상 속에서 살아가는 완벽한 존재가 아닌, 누구나 조금씩은 부족하고 모순적인 측면도 있는 현실 속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거절을 받아들이는 사연자님의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강남푸른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이규홍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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