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시대, 몸과 마음의 면역력 키우기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완연한 봄기운에 괜스레 마음이 들뜨는 요즘입니다. 비록 미세먼지다, 황사다 대기 질이 좋은 날은 손에 꼽히지만 꽃놀이 가는 부모님도, 야외 활동을 즐기는 분들의 모습도 어느덧 낯설지가 않습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멈춰 있던 시간을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반갑고도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듯 코로나19 이전으로 일상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에 안도감과 함께 복합적인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19 펜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일상이 거의 마비되는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상실하는 아픔을 겼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소중한 일상은 물론이고 건강과 일자리를 잃어버린 분도, 비통한 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던 분들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장기간 사회적으로 단절된 채 상실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고립과 상실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의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졌습니다. 언제, 어디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언제 이 전쟁 같은 상황이 끝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무엇 하나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리운 이들과 함께할 수 없는 외로움, 마음이 답답하고 활기를 잃어버린 우울감 등등. 언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에 사람들은 점차 심리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지쳐갔고, 삶의 희망을 잃어 가는 분들의 모습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세계 각국에서 코로나 시기에 정신질환이 증가했다는 수많은 보고가 있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2021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20대 여성의 자해 및 자살률 증가, 10대 남성 자살률 증가, 우울증 유병률 증가, 어린이·청소년 정신질환 대폭 증가 등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코로나 사태는 아직 한창 자아 정체감이 발달하고, 정신적 성장 과정 중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집단외상을 불러일으켰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집단외상이란, 사회의 상당수 구성원이 중요한 사건이나 재난, 재해를 함께 겪으면서 그 일로 인해 겪는 증상이나 징후, 특정한 현상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현재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어떤 위협이나 부적응을 겪을 가능성을 시사해 줍니다. 이는 모두가 힘든 시기를 보낸 와중에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실태와 회복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겪으며 일상생활의 리듬을 잃었고, 규칙적이던 생활에는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매일 아침이면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발걸음을 향하던 학교와 회사에 가는 날은 점점 더 줄어들었고, 그만큼 가정에 머무르는 시간은 늘어났습니다. 학생도, 직장인도, 주부들도 기상 시간이나 매일 하던 루틴이 깨지면서 생체리듬도 함께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사람들과 대면으로 만나 소통하는 대신 SNS나 휴대폰으로 간단히 안부를 묻는 것으로 대체됐습니다. 유튜브나 OTT 시청, 게임 등 스크린 타임이 증가하는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더 악화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스크린 타임의 증가는 특히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비만 문제와 함께 학습상의 문제를 불러오기도 해서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아동이나 청소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실태 대국민 인식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코로나 펜데믹 이후 디지털미디어 과사용 그룹이 약 두 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우리는 친구나 지인들과의 모임은 거의 하지 않게 됐지만, 가정에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 간에 갈등으로 힘들어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가족과 더 많이 소통하고 끈끈해지는 계기가 됐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가족과 친구는 물론, 직장과 학교, 지역사회 등 소속 단체와 네크워크 등의 소중함과 그 의미에 대해 더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치, 경제, 사회 분야 및 개인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의 여파가 남아 있습니다. 국가나 지역사회, 여러 민간단체들은 사회 곳곳에 생긴 균열과 대립을 들여다보며 차차 메꿔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개개인의 측면에서는 그동안 약해진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다시 강하게 키워 나가려는 생활 속 실천이 필요합니다. 장기화된 피로감과 무력감, 우울감 등을 해소하기 위해 각자에게 맞는 방법을 모색하고, 관계의 단절로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을 다시 연대감과 친밀감으로 쌓아 나간다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불규칙한 생활로 무너진 몸의 건강부터 챙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실천 가능한 수준의 운동 목표나 수면 시간, 건강한 식사 등 계획을 세워서 하나씩 지켜 나간다면 어떨까 합니다. 혼자서는 동기부여가 잘 되지 않는다면, 친구나 애인, 가족 간에 함께 계획을 짜보고 서로 격려하며 긍정적인 자극제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면역력도 키워야 합니다. 모두가 힘들었을 펜데믹 시기를 무사히 잘 버텨 주어서 고맙다고, 고생이 많았다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로 마음을 전할 때, 고단하고 긴장해서 얼어 있던 마음도 어느새 스르르 녹아 온기가 돌 것입니다.

또 그동안 메시지나 SNS상에서 안부를 묻던 지인이나 보고 싶었던 이들에게 연락해 그간 못 나눴던 이야기꽃을 피워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친구와 친해지는 것을 힘들어하는 자녀분이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주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고민에 귀 기울이면서 도움이 되는 실제적인 팁들을 공유해 주십시오. 나에게는 별것 아닌 정보나 지혜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귀한 조언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너무 하고 싶었으나 마음껏 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이나 다양한 체험, 여행 등등 나에게 기쁨과 여유를 주던 활동들을 하나둘씩 재개해 보시기를 추천 드립니다. 기나긴 코로나라는 터널을 지나며 쌓였던 스트레스는 저 멀리 날려 버리고, 지쳐 있던 일상에 조금씩 활력이 샘솟기를 바라겠습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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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Collective Trauma and the Social Construction of Meaning, Frontiers in Psychology, 201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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