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에 올라탈 준비, 경력직 이직을 위한 조언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Welcome on board!” 비행기나 배에 올랐을 때 탑승 환영의 의미로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on board’는 새로운 여정의 출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조직에서는 구성원 환영 및 조직 적응 프로그램을 ‘온보딩 프로그램’이라고 부릅니다. 조직 비전이나 가치, 문화와 규범, 소통하고 일하는 방식을 익힐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조직에 잘 융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을 ‘소프트 랜딩(soft landing)’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에 잘 적응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특히 경력직으로 이직하는 경우 신입사원일 때와는 또 다른 고민에 부딪힙니다. 사회 초년생일 때는 모르거나 실수해도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경력사원은 직무 전문성과 조직 생활 경험이 있기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빨리 조직에 융화되어 최고의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경력직으로 이직할 때는 더 많은 부담감과 걱정, 불안을 느낍니다. 이전 직장과 비교도 하고, 이직이 잘한 선택인지, 새로운 일터의 사람들은 어떨지,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이런저런 걱정이 듭니다. 모르는 것이 있어도 경력직이라는 부담감에 쉽게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직장인 A씨는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얼마 전 대기업으로 이직했습니다. 비슷한 연령과 성별, 같은 전공과 직무의 동료들로 구성되어 있던 전 직장과 달리 새로운 직장은 연령대, 성별, 전공, 직무가 다양한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또, 소규모로 독립적으로 업무를 처리했던 이전 직장과 달리 규모가 큰 새 직장에는 다양한 부서가 있고, 결재 라인도 복잡해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연봉이나 복지, 근무환경은 훨씬 좋아졌지만 A씨는 어쩐지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고 마음 붙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동료들이 자신을 견제하는 것 같고, 다가가기 어려워 혼자 밥을 먹을 때도 많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 같은 부담도 들고,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좌절감과 실망감이 듭니다. 친한 동료들도 많았고 업무적으로도 인정받았던 예전이 그리워지면서 전 직장에 대한 향수병이 이따금 찾아옵니다. 

A씨의 사연이 공감되시나요? 분명 이전 직장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으로 인해 혹은 더 나은 변화를 위해 이직을 선택했음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조직 몰입’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조직 몰입은 조직에 대한 개인의 애착에 관한 것으로, 전반적 조직 몰입과 유형적 조직 몰입으로 세분됩니다. 그중 전반적 조직 몰입은 조직 목표를 수용하고 조직을 위해 일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조직에 계속 있고자 하는 욕구로 구성됩니다. 

조직 몰입은 이직과도 높은 상관을 보이며, 낮은 몰입은 이직 의도나 실제 이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조직 목표를 수용하고 조직 및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을 갖는 것이 이직 후 성공적 정착에 중요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새로운 조직에 애정을 갖고 조직의 목표나 문화에 공감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조직 몰입을 증진하고 이직 후 성공적으로 정착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1. 관계적 자원 구축하기

경력직 이직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대인관계’입니다. 좋은 관계적 자원은 업무 능력 향상과 심리적 안전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집단 몰입’은 동료들의 협력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의미하며, 이직을 예측하는 중요한 변인입니다. 즉, 동료들과의 관계가 조직에 계속 머물지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원활한 협업을 통한 업무 성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Ryan & Deci는 동기이론을 통해 자율감, 유능감, 관계감이 기본적 동기 형성의 3요인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중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을 조절한다는 느낌인 자율감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는 유능감은 새로운 조직에서 느끼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업무의 범위나 업무 숙련도가 이직 초기에는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반해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의미하는 관계감은 이직 초반에도 개인의 노력을 통해 비교적 변화가 가능한 부분입니다. 관계감은 넓은 의미에서는 소속감까지 아우릅니다. 

물론 새롭게 합류한 조직에는 이미 기존 구성원 사이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어서 소외감이나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분명히 도움을 주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씨의 경우 멘토 프로그램이나 One on One과 같은 사내 프로그램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업무적 연결고리가 있거나 팀 내에서 우호적인 사람들,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또 먼저 입사한 경력직 선배들,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경력직 동료들과의 만남을 통해 어려움을 나누고 조언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동료들과의 식사 약속, 회식 참여, 동호회 활동 등을 통해 인맥을 넓히고 업무적, 관계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활동을 처음부터 시작하기가 부담스럽다면, 초기에는 시간을 갖고 새로운 조직의 분위기나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신뢰하고 도움이 될 수 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먼저 관계를 맺어 갈 수도 있습니다. 웃는 얼굴로 동료들을 대하고, 업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태도, 동료들이 휴식 시간이나 업무 중 잠깐씩 가벼운 농담을 나눌 때 함께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2. 새 술은 새 부대에

익숙하고 편안했던 사람들과 환경을 떠나 새로운 사람과 문화,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분명 큰 스트레스입니다. 이전 직장에서 체득했던 조직문화, 업무방식, 소통방식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당연히 시간이 필요합니다. 

경력직은 그동안의 경험과 업무 스타일, 이전 직장에서의 관계적 자원과 성과, 보상 등이 기준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조직의 비효율적인 부분이나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볼 때면 예전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A씨 역시 지금 이런 과도기에 있는 셈이지요. 

물론 이전 직장에서 배운 모든 것을 다 지울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조직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예전 직장의 소통방식이나 성공적이었던 업무방식이 새로운 직장에서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조직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곳의 문화와 소통방식은 어떤지를 충분히 살펴보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3. 긍정적인 마음과 변화에 대한 현실적 인식

긍정적인 기분은 창의성, 직무만족 및 직무능력 증가, 낮은 이직률과 관련 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과 자세는 새로운 자극이나 환경을 받아들이는 데도 영향을 줍니다. 같은 피드백이라도 긍정적인 기분에서는 조언으로, 부정적인 기분에서는 비난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일터에서 적응할 때는 긴장되고 위축되기 때문에 부정적 자극에 더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치가 낮아진 것 같아 부정적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너무 채찍질하거나 몰아붙이기보다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림을 인정하고, 실수하거나 버벅거리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A씨의 경우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며, 새로운 직장에서는 예전과는 다른 업무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음을 배우고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을 전환해 볼 수 있습니다. 또, 동료들이 자신을 소외시킨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들 역시 A씨에게 적응이 필요하며,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처럼 조직 몰입과 대인관계는 이직 후 성공적 안착을 위한 중요한 열쇠입니다. 지금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르는 전 직장이나 친했던 전 동료들 역시 처음에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최초의 순간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새로운 직장에 첫발을 내디딘 날, 갑자기 낯선 행성에 뚝 떨어진 외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수도 있습니다. 새로운 언어와 환경, 문화에 적응하며 우리는 적잖은 충격을 경험합니다.

때로는 부드러운 연착륙이 아닌, 아주 험난하고 위험천만한 착륙 과정을 거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낯선 미지의 세계 같은 그곳에도, 여러분을 도와줄 누군가가 반드시 있을 테니까요. 새로운 문화와 언어를 배우며, 그 길을 함께 할 가이드, 멘토 같은 좋은 동료와의 관계를 통해 여러분의 새로운 직장생활이 즐겁고 흥미진진한 여정이 될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정정엽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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