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Mail] 헤어짐을 준비하는 남자 친구, 어떻게 놓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정신의학신문 | 최강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후반 학생이자 직장인입니다. 인터넷으로 알게 된 사이였던 저랑 제 남자친구는 현재 시간을 가지고 있는 중입니다. 온라인상으로만 거의 일 년 반, 2년 가까이 알고 지냈고, 일 년 정도 되는 기간 썸을 타다가 직접 만나서 얘기도 하고 좋은 감정이 생겨 현재까지 약 일 년간 연애를 해 왔습니다. 

다만, 비행기를 타야 만날 수 있는 장거리 연애라 자주 못 보긴 했지만 매일매일 연락하면서 더 좋은 감정이 커졌고요(적어도 저는요). 한 달 반이나 두 달 주기로 일주일에서 이주일 정도를 만났고, 12월 말 연말 여행을 같이하며 3주라는 꽤나 긴 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좋은 감정이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나 진지한 얘기를 하기 어려운 상대였고(회피형 기질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시도할 때마다 말을 피하거나 돌려서 저는 더욱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이 관계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에서요. 

그래서 우리 관계를 지금 당장 바꾸자는 건 아니고, 이후에 변화를 맞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 진지한 관계를 생각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는 자기는 결혼은 하고 싶으나(많이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가족과 친지 분들의 압력 때문에요), 저랑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속마음을 말했습니다. 또 본인은 다른 여자를 만나 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면서요. 

저런 말을 듣고 나니 헤어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하자고 했으나, 남자 친구는 평소처럼 지내면 안 되냐는 식으로 한 번 얘기했고, 저는 “아닌 것 같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먼저 헤어짐을 이야기했지만 정리를 하려고 보니 좋아하는 감정이 너무 커서 힘들더군요. 사진을 지우려고 해도 마음대로 안 되고, 연락처를 차단한다거나 그런 걸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다시 붙잡았습니다. “헤어지기 싫다. 부담 주지 않을 테니 다시 만나 달라고요.” 

그랬더니 어떻게 그게 그렇게 금방 바뀌느냐면서, 헤어질 것 같으니까 지금 본인이 얘기하는 걸 다 들어 주는 게 아니냐면서, 어차피 같은 이유로 헤어질 테니, 지금 헤어지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시간이라도 좀 더 갖자고 하며 지금 2주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으며 지내자고 했습니다(글을 쓰는 시점에는 약 일주일 지났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피가 마르는 것만 같아요.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정말 큰데, 지금 제가 붙잡는다 고 해서 잡힐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서 너무 힘이 듭니다. 시간을 가지자고 한 것도 저인지라, 먼저 말을 걸기도 힘드네요.

지금 당장이라도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계속 어디에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체크하게 되고, 계속 집착이 늘어나는 것 같아 제가 제 자신이 보기 싫습니다. 바쁘게 살려고 약속도 많이 잡고, 헬스도 다니고 있지만 집에 오면 느껴지는 공허함은 채워지지가 않아요. 어떻게 하면 가장 빠르게, 제가 편해질 수 있을지 조언을 구해 봅니다. 

 

 

답변) 안녕하세요, 사연자님. 반갑습니다. 아직 사랑과 미련이 남아 있는 남자친구 분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지금의 시간이 사연자님께는 얼마나 칠흑같이 깜깜한 밤일지 조심스럽게 헤아려 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아픈 법이지요.

사연자님께서는 현재의 남자친구 분과 약 일 년간 연애를 해 왔고, 아마 좀 더 진지한 만남, 그러니까 결혼을 염두에 두고 교제를 이어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네요. 그만큼 남자친구 분에 대한 감정이 진지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도 깊으셨을 테지요.

그런 사연자님의 마음과 달리 남자친구 분은 당장은 결혼 생각이 없고, 만약 결혼을 한다 해도 사연자님과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던 모습에서 사연자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프셨을지 무척이나 안타깝습니다. 

남녀 간의 연애와 사랑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특성 또는 성격 유형인 사람과 좀 더 잘 맞고, 또 잘 맞지 않는지 나의 연애관과 결혼관에 대해서 알아가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잘 맞는 상대를 찾아 자연스럽게 ‘만남’과 ‘이별’의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사랑의 달콤함과 행복감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고 탐색하는 동안 우리는 설레고 들뜨며 행복감에 젖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를 유일하게 이해해 주고, 영원히 사랑해 줄 것만 같은 기쁨도 잠시, 때로 갈등이 심해지고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 채, 상처만 남은 것만 같은 이별을 맞이하게 되기도 하죠.

 

어쩌면 남자친구 분은 진지한 연애나 결혼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아직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남자친구 분은 미래를 염두에 두고 진지한 만남을 이어 가고 싶다는 사연자님의 제안에 ‘거절의 의사’를 밝혀 온 것이지요. 이로써 사연자님께서는 연애의 종착역에 대한 생각이 남자친구 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던 것이고요.

사실 처음 만남부터 두 분께서 결혼을 전제로 연애를 시작한 것은 아니기에, 결혼에 대한 두 분의 생각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결혼뿐만 아니라 연애를 할 때조차 서로 감정의 온도 차 때문에 다투는 분들이 많은 것처럼, 우리에게 사랑과 연애, 결혼은 참으로 맞추기 힘든 퍼즐 조각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사연자님께서 내린 결론은 ‘헤어지는 게 맞다.’는 것이지만, 이는 ‘헤어지고 싶다.’가 아닌 ‘헤어져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에, 좋아하는 감정까지 정리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연인과의 이별은 친밀한 관계를 상실하는 고통스러운 경험이며, 이러한 상실의 경험에는 애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니 슬프고 아린 마음을 너무 속히 없애려거나 외면하기보다 비록 힘들더라도 지금의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애도하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사연자님의 감정은 식지 않았고, 상대를 좋아하는 마음이 크기에 당장에 그를 놓아 주지도, 또 붙잡지도 못하는 그 심정이 오죽하실까요. 그래서 일종의 유예 기간을 가져 보자고 제안하신 것은 잘하신 결정 같습니다.

이 기간 동안 남자친구 분께 많이 연락하고 싶더라도 조금 참아 보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남자친구의 일상사나 관심사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사연자님의 현재 마음과 지난 일 년간의 연애 과정을 찬찬히 복기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상실의 아픔을 애도한다는 것은, 이별에 따르는 부정적인 정서에 머무르고 깊이 느끼는 것만큼이나 관계의 역사를 돌아보고 성찰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즉, 이번 연애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정리하며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상대의 어떤 점이 특히 좋았고, 서로가 기대하고 바라던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왜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었는지, 다음 번 연애 상대나 결혼 상대로서 사연자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무엇인지, 이번 연애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인지 등등 말입니다.

 

 

사연자님께서는 현재 힘든 마음과 생각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게 느껴져 조금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에 바쁘게 약속도 잡고, 운동도 하며 일상의 시간을 빼곡하게 채워 가고 계신 듯합니다. 물론, 일상의 활동을 이어 가시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입니다. 하루 중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과들의 루틴을 잘 지켜 나가시는 것 역시 권유 드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의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 못지않게 지금은 이별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을 충분히 느껴 보고,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 역시 중요한 때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슬픈 노래를 들으며 남자친구 분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보고 펑펑 눈물도 흘려보고, 남자친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편지로 써보기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답답한 마음을 크게 한 번 외쳐 보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마음과 생각과 행동을 모두 사용해서 온몸으로 사연자님만의 이별 방식을, 애도 과정을 자연스럽게 겪어 내신다면, 어느덧 이 이별의 끝에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참으로 아픈 시련입니다. 그러니 지금 사연자님께서 느끼시는 아픔과 고통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감정이자 인생의 한 페이지임을 기억하신다면 좋겠습니다. 

 

사당숲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 최강록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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