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를 지키는 마음 독서법

언젠가부터 신문과 방송, 교육 분야에 ‘리터러시(literacy)’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리터러시란, 문자화된 기록물을 통해 지식과 정보
를 획득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미디어 리터러시’는 다
양한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체를 통해 접한 콘텐츠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고, 나아가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리터러시 능력이 없다는 것
은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문맹과 구분된다.
예를 들어 주식에 관심이 생겼다면, 주변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추천하
는 종목에 투자하지 말고, 다양한 경제 신문과 전문가 분석, 산업 분야에
대한 공부를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인물의 종목 추천이나, 출처가 불분명한 뉴스의 정보를 바탕으로
투자를 결심하는 것은 리터러시 능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카더라 통신이나 루머에 휩쓸려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행
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처럼 리터러시가 중요해진 건 유튜브나 메신저를 통한 가짜뉴스의 급
격한 확산,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과 같은 배경 때문이다. 그 중요성을
대변하듯, 요즈음 주민센터나 초등학교 방과 후 수업, 도서관 강연 등에
서 종종 리터러시 교육을 발견할 수 있다. 각종 뉴스가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시대에 그 정보의 가치와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리터러시라는 개념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순 없을까. 주
변의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으로 ‘진짜 내 감정’을 무시하는 대신, 나 자
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은 곳의 목소리를 경청할 방법은 없을까? “힘들
다”고 말하는 건 정신력이 약해서라는 주변의 무신경한 말 말고, 번아웃
이 온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말고, 지금 내가 기쁜지, 슬픈
지, 왜 우울한지 정확히 읽어내는 것 말이다.
흔히 리터러시 능력은 짧고 쉬운 글보다, 어렵고 복잡한 개념의 글을 읽
을 때 명확히 판별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식에 대한 글이라면
‘코스닥’ ‘코스피’ 등 기본적인 용어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증권사 리
포트에 등장하는 위험회피계수, 효용함수와 같은 복잡하고 생경한 단어
들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이해, 전문가들의
투자 전략, 주식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산업의 주요 트렌드나 국제
정세에 대한 정보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려운 내용이 나
와도 지루함을 견딜 수 있는 끈기, 궁금증을 해결하려는 지적 욕구, 자신
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용기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런 내용은 필요 없
다’거나 ‘몰라도 된다’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도 있어
야 한다. 그래서 혹자는 리터러시를 두고 ‘품위의 문제’라고 말하기도 한
다.
결국 리터러시는 어떤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태
도’가 바탕이 된다. 처음에는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져도, 포기하는 대
신 잠시 덮어뒀다가 다시 꺼내보는 자세를 가진다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전체적인 리터
러시 능력도 향상될 수 있다.
내 마음의 리터러시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감정은 간단명료할 때보다
복잡미묘할 때가 많다. 그런 감정을 갖게 된 이유나 환경도 다양하다. 기
쁨과 동시에 씁쓸한 감정, 미움과 동시에 연민의 마음, 웃음과 동시에 슬
픔이 밀려올 수도 있다. 이렇게 복잡한 감정이 불쑥 고개를 들 때 우리는
얼마나 깊이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는가. 감정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
이긴 했던가. 아우성치는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외면하
고 다그치진 않았던가. ‘나’라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 시간이 과
연 얼마나 될까.
감정은 마구 뒤섞여 폭발해 나올수도, 마음 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을 수
도 있다. 너무 깊고 혼란스러워 형체가 잘 보이지 않더라도, 뒤엉켜버린
감정을 어르고 달래 조금씩 풀어놓는다면 분명 내 진심과 마주할 수 있
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섣부른 판단과 성급한 비난으로 상처를
주지 말자.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어 낯설더라도 끈질기게 이해하
려 노력해보자. 오늘도 고군분투하는 스스로에게 적어도, 그 정도는 해
주자.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삶의 의지도, 열정도, 행복도 쟁취할 수
있다. 가짜 뉴스를 판별하는 능력이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나오는 것처
럼 나의 진짜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은 내 마음에 대한 리터러시, 즉 내
마음의 품위를 지키려는 노력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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